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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본질에 대한 이해 #4

 

e스포츠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e스포츠를 조명하는 것에 대해 작가가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다른 풀이로는 (*독자에게 작가의 특수한 저술 목적을 전달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e스포츠와 e스포츠 역사를 조명하는 방식에 대해 왜 고민해야 할까요? 그것은 그것이 우리가 e스포츠를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소결론을 내리면 우리는 일종의 작가인데 어떠한 관점에서 우리가 우리 e스포츠를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가진 e스포츠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낮아질 수도, 다르게 판단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우리가 e스포츠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중론으로 가지고 있는지는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관점이 우리의 e스포츠가 실제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 도구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요? 이러한 노력들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e스포츠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한 분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e스포츠의 권위를 어디서 찾는 것이 맞을까요? ICT 융합일까요? 스포츠일까요?" 한참을 논의하였지만 결론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 제가 전부 안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결론적으로 제게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스스로 권위를 세우시게?" 물론 농담조입니다. 연장선상에서 한 기관 담당자가 e스포츠의 스포츠 기관 진입에 대해 시대 역행적인 현상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필자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아예 못 박아두고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포츠 기관에서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이유는, 우리 구조 특성상 지회를 만들 수 없는 것을 이해해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더욱이 커뮤니티에서의 한 댓글과 같이 스포츠적인 면으로만 따지면 비디오 게임이 인간 심판보다 기술적으로 더 공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또 단순히 돈 때문도 아닙니다. 이는 전통 스포츠 기관이 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이득인지 아닌지를 그곳에 있는 기득권자들이 아직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권위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대화는 참 씁쓸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스포츠 기관에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목적이어서) 우리를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스포츠 기관에서 인정하면 높아지는 것이고 스포츠 기관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낮아지는 것입니까? 대체 우리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지금껏 우리는 스포츠 기관의 논리에 맞게 우리를 짜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온라인 세상에는 국경도 지역도 없는데, 광주라는 이름으로 나가려면, 광주에 있는 친구들을 굳이 찾아야 하는 노력까지 해왔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노력들이 잘 되지도 않았습니다. 지회를 만들지 못해서 기관에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건 사람이 속한 사회에 사람 자체가 없는 것과 같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제가 만약 전통 스포츠라면 오히려 우리에게 묻겠습니다. 왜 그리 스포츠 기관에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십니까? 즉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왜 그렇게 노력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맞지 않는 옷이 아니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아니면 맞는 옷이라고 스스로를 속이시는 건가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권위는 우리가 세워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니면 우리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맞지 않는 어른 옷을 입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나요? 저는 불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스포츠가 e스포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게임도 미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제가 그들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e스포츠가 스포츠를 비롯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스포츠는 게임 산업에 속한 마케팅 툴이 아닙니다. 미디어 계열의 엔터테인 산업 중 하나도 아닙니다. 스포츠의 한 분야도 아닙니다. e스포츠 그 자체이며 그 자체로도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문화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면서 모든 관계자와 협업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e스포츠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려고 하는 것에는 완강히 저항해야 합니다. 저는 그 기관 담당자에게 말합니다. 스포츠 기관이 e스포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e스포츠를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거라 이건 시대착오적인 형태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 반영적인 내용이라고 풀이해야 합니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전시관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관에는 체험적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기 때문에 VR 장비를 넣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 e스포츠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VR 장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반응형 인터렉티브 기술이 사용되어야 합니까? 왜 안시가 높은 프로젝터를 사용해야 합니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하여 명확한 e스포츠적인 근거가 없다면 이 전시관에서 e스포츠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그러한 기술들을 전시하기 위한 도구로 전략하게 되는 것입니다.

 

e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처음 펜을 잡았을 때 저는 'e스포츠의 역사를 어떻게 표현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대답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열악하게 탁구 테이블에 흰 천을 올려 시작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화려하게 발전했으니 이 역사관을 보는 모든 이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서술하겠습니다." 대부분의 e스포츠에 대한 조명이 당시 그러했기 때문에 듣는 이들 모두에게서 이 대답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공급자 중심의 서술입니다. 이를 테면 우리가 이렇게 뛰어난 생각으로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어서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했고 소비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소비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더 발전시켜 지금의 이 위치로 이끌어 왔다는 식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맞는 설명입니까?

 

e스포츠의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e스포츠를 콘텐츠로 만든 역할을 한 사람이 e스포츠의 주인공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는 즉시 공급자 마인드에서 소비자 마인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e스포츠를 즐겼던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e스포츠를 즐겨 왔고 어떻게 팬 덤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소비자 지향적인 물음이며, 그에 대한 답변이 소비자 중심적인 해석을 가져옵니다. 이를 테면 '오락실에게 고수들의 게임을 뒤편에 서서 보며 감탄한 적이 있었나요? 지금은 이렇게 큰 무대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전용 경기장에서 또는 실시간 방송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뜻 그럴 뜻해 보이는 이 해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다분 자신이 풀어내는 스토리에서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줄 가능성을 배재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무엇과 같은가 하면, 남자 주인공이 애절하게 죽는 내용의 러브스토리 영화를 보고 있는 이 순간은 그 넘쳐 오르는 감수성에 펑펑 울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당시 멜로의 정확한 스토리조차 기억도 안 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e스포츠라는 것에 대한 추억을 전달하는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지만 대신 e스포츠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테면 '왜 우리가 그렇게 큰 무대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있게 된 건가요?'라는 물음에 이 해석 방식으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과연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이는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수록될 모든 e스포츠에 대한 조명에는 저만의 뚜렿한 작가주의적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e스포츠를 모든 기 존재하는 권위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고, 스스로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e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해 왔던 것을 이렇게 4편의 시리즈로 적어내려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믿으시나요? e스포츠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시나요? 어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대의 건축가에게 성당 건축 디자인을 맡기고 화가에게 벽화를 그리게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찾고 더 나은 것을 해 놓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천년이 넘게 남아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기리게 됩니다. e스포츠라는 이 작품을 여러분은 무엇이라 설명하십니까? 우리에게 e스포츠 전시라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뚜렿하게 매 순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매일 우리 앞에 주어지는 빈 공간을 생각나는 대로 그럴싸한 것으로 채우는 것 외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시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순히 기대에만 부응하게 또는 효과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만들어지는 리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매 순간 이러한 작가주의적 관점을 투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작가주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한 위원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선수들이 이 전시관 공간에서 자신이 전시되는 것에 과연 명예로움을 느낄까?' 물론 누군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구조나 디자인(표현)을 좀 더 명예롭게 하라는 의견으로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과연 이 e스포츠라는 작품을 이 공간에 전시하는데 너는 어떤 관점을 담았는가?' 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 관점을 이해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에 이렇게 전시된 선수들을 그 배경 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가?' 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설명하는 방식이 왜 사람들의 입에서 '와'라는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것인가?' 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지금 그 자리에서 하고 있는 그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종류의 물음과 구체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있든 없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한 가지는 이것이 여러분을 작가로 만드는 것이고 항상 여기에서 복제가 불가능한 창조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창조가 곧 권위입니다. 그 세워진 권위가 곧 우리 자신이면서 가치인 것입니다. 이것이 e스포츠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본질입니다. 

  

 

by erdc.kr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