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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본질에 대한 이해 #1

 

e스포츠란 명백하게 눈으로 보이는 사물로써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물이 아니라는 개념을 끌어온 이유는 e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는 노력한다고 더 높아지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더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기 위함입니다. 연결되는 개념으로 e스포츠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는 기술이나 과학의 발전과 같이 진화적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e스포츠란 예전에는 CRT 모니터를 사용하다가 이제는 LED 모니터를 사용하게 된 것과 같은 형태로, 이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다가, HMD로 사용 장비로 진화한다고 해서 가치가 함께 진화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가치를 설명할 때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가치를 스스로 설명을 할 때, 그게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본질적인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e스포츠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e스포츠가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고,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며, 그것이 영구적이라면, 가치 자체는 고정적인 것이며 영구적인 것입니다. 예전에도 사람들이 e스포츠를 좋아했고, 지금도 e스포츠를 좋아하며, 앞으로도 이 e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가 동일한 것이라면,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동일한 이유를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바로 조명됩니다.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이 e스포츠는 우리가 예상하는 어느 한 이상적인 목적지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역사란 (*그것이 어디든) 시간에 지배를 받아 하나의 방향으로만 나아가기에 우리는 여하튼 하나의 선 위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앞서 언급드린 대로 더 나은 가치로의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인상파 화가의 시대가 끝나고 입체파 화가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인상파에서 입체파로 미술의 예술성이 발전한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상파의 시대라면 그때의 환경에 맞추어 그 예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가치는 그래서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e스포츠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이 설명을 먼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분명 발전하는 것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차를 타다가 자동차 개발돼서 그것을 타는 것은 분명 발전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e스포츠는 왜 이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e스포츠는 문화(*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문화의 영역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대답을 거듭할수록 점점 e스포츠의 본질에 접근하게 됩니다. 

 

e스포츠란 게임이란 도구를 이용해 경기(*대회)라는 방식으로 창조된 콘텐츠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콘텐츠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은 제공받은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즉 우리는 여기서 이 콘텐츠의 가치가 '어디론가 발전을 한다'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여타 예술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문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하게 정의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술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중에 속한 많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 소비하는 행위에서 영감을 얻거나 감동을 받거나 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렇다면 미술은 콘텐츠입니까? 맞습니다. 음악도 콘텐츠입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e스포츠도 콘텐츠입니까? e스포츠도 예술과 정확히 동일한 속성을 지닌 콘텐츠입니다. 그렇다면 콘텐츠란 왜 발전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영감이나 감동과 같은 감정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감정이란 발전시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유하고 교류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e스포츠를 과감히 발전에 영역에서 끄집어냅니다.   

 

e스포츠란 (*그러하기에)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을 다루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e스포츠는 인터넷이 보급되고 피시방이 활성화되고 네트워크 대결이 지원되는 스타크래프트가 나와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이 설명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수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e스포츠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그 게임을 잘하는지가 궁금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오락실에 가면 하나씩 있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수의 플레이를 숨죽이며 지켜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플레이가 내게 영감과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당연히 이 영감과 감동을 계속 확인하고 싶어 집니다. 즉, 누가 제일 잘하는지 궁금하고,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싶고, 최종적으로 누가 제일 잘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렇제 않으면 왜 우리는 그 당시에 임요환에게 열광했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우리가 임요환에게 열광한 이유가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게 되어서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빛'이라는 콘셉트는 인상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상파라는 것 자체는 그 안에서 그것을 이해한(*추구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사람이 빛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회화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펼친 것이며, 우리는 그 사람이 펼친 작품을 보고  영감과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e스포츠도 동일합니다. e스포츠란 이 일에 열정을 바쳐 지금까지 종사하고 있는 여러분과 나,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행위 예술에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존재 자체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우리를 설명하는 가장 완전한 도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설명하는 방식을 잃어버렸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자꾸 설명하려고 해왔기 때문입니다. 전통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많이 차용해 왔었습니다. 또 예능에 있는 개념들도 차용해 왔었습니다. 게임 산업에 있는 것들도 영화 산업에 있는 것들도 되는 대로 끌어와 우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꼭 맞는 옷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너는 누구야?'라고 아직도 묻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e스포츠는 문화 예술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며 핵심은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 중심의 가치판단입니다. 그런데 유독 오히려 우리가 우리를 설명하는 데는 이처럼 사람이 아닌 다른 데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꾸준히 '한국 e스포츠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그 의견을 구합니다. 그런데 하도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설명해 와서 그런지 몰라도 (*일종의 고정적인 프레임이 써져 있어서 그런지) 이런 유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이전이나 지금이나 듣고 싶은 내용이 대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적으로 특히 인프라적으로 어떤 유리함이 있었는지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90년대 대한민국은 광랜 공사가 있었습니다. IMF 시대에는 IT 육성 정책이 있어서 실직자를 중심으로 많은 PC방이 생겨났습니다. e스포츠(*경기)가 가능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e스포츠 강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했는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 중심의 가치 판단을 해야 합니다. 문명의 이기가 우리에게 어떤 편리함을 가져왔는가 처럼, e스포츠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선사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저는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선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누구라고 설명하십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왜 좋아해야 한다고 판단하십니까? 그것을 알아야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곳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에는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더 잘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며, 더 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더 깊은 수준의 고민을 해왔었고, 그 고민을 반영한 시스템들이 속속 늘어났으며, 그 결과로 우리의 이 문화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e스포츠가 단순히 스타크래프트 리그나 LOL 리그를 방송으로 또는 경기장에 방문해 보는 것을 즐긴다는 류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미스터 빅>이 내한하는 것과 <아리아나 그란데>가 내한하는 것을 예술 - 음악 - 팝 - 공연 문화 등등의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예술가들을 찾는 관람객들이 같은 정의된 공감대에 기인한 감정과 해소(*카타르시스)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각의 문화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묶을 수도 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를 나누는 방식과 개념상 동일합니다. 결국 인문학적 관점에서 e스포츠에 대한 연구는 여기에 속해 즐기고 있는 사람의 공유되고 공감되는 한 작품을 시대별로 또 개개별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찾아낸 각각의 작품을 묶어도 보고 구분해서 보기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에 접근해 갑니다. 결론입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고 나서야 성격이 다른 것들과도 묶어도 보고 구분해 볼 수도 있게 됩니다. 즉 스포츠와 e스포츠의 관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e스포츠의 본질 자체를 먼저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 PC방이 활성화된 것도, 스타크래프트가 출현한 것도 전부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관점에서 우리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결국 이 작품의 패턴을 찾아내는 것과 그것을 하나로 묶어 정의하는 일입니다. 정리하면 e스포츠는 역사상 순간순간 그려왔던 명장면 명장면들이 우리에게 일률적인 공감대로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비하는 패턴이 있게 되어 문화라고 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시대적인 특성이 반영되어 정의가 가능한 형태로 감정이 매 순간 폭발해왔던 것인데, 그때를 항상 기릴 수 있는 전방위적 카타르시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실현하는 사람이 여러분이며 그것이 곧 e스포츠입니다. 이는 절대로 그저 전자 스포츠라는 단어로는 이러함이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e스포츠는 하나의 영원히 남을 미술 작품처럼 뚜렷한 형태로 남겨져 있고 그것을 가진 사람만 그 가진 그것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명확한 스토리와 설명을 좋아하지 과도히 전문적인 것이나 정성적인 것들은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아서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서 (*전문가와 비 전문가가) 서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위대한 e스포츠 선수라는 주제를 던졌을 때 전문가는 전문가가 생각하는 e스포츠가 있고 상호 간에 비교할 수 있는 가치 기준들이 있으며, 그에 따른 결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에게는 임요환과 장재호는 여러 가지 의미로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위대한 e스포츠 선수란 명확함 그리고 그 명확함 속에 녹아 있고 단순하게 설명되는 가치(스토리)입니다. 전문가가 비교하기 어렵다고 해서 소비자가 어렵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비단 형평성을 포함한) 모든 전문 배경 지식을 철저하게 필요 수준으로 포기해야 하는 과감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는 섬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의 주장을 강화하면 할수록 우리는 육지에서 점점 더 먼 섬이 됩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닌 우리 각자의 e스포츠에 대한 자세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이라는 도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도구들이 우리라는 섬을 육지와 친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합니다. 저는 전문성을 무시하라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성을 가지되 우리가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살짜리가 이해할 수 있는 축구와 조세 뮤리뉴가 이해하는 축구가 본질적인 것이 같다면, 이 축구를 사랑하게 만들고 이 축구를 잘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3살짜리 아이가 아니라 조세 뮤리뉴와 같은 전문가에게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e스포츠는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것을 왜 좋아했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이 여전히 가치를 지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문화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술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예술에 대해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도록 계속 유지하고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e스포츠의 본질입니다. 

 

 

by erdc.kr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