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e스포츠의 본질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의미의 e스포츠에 대해서 확인해 보았으며 이를 조명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도 같이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식의 조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또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의 문화로써의 e스포츠적 관점에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무슨 특징을 지니고 있고 그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항상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e스포츠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문화에 대해서는 그 문화가 존재하는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문학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때의 그 한 사람을 격렬하게 추적하는 것, 그것이 연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지속 해야 할 일이며, 이 끈질긴 노력이 이어지는 것이 우리를 더 단단한 토대 위에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철학에 대한 접점이 적은 독자에게는 다소간에 친숙하지 않은 단어일 수 있지만 인문학에는 스키마(schem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스키마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 축척된 지식, 개인적 관심사 등이 하나의 인지적 틀이 된 것을 말합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을 빌리면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말하는 프레임 이론입니다. 최 교수님의 프레임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사건과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우리가 가진 프레임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합니다. 결국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정의는 특정 스키마를 가지는 사람들이 그 스키마에서 비롯되어 형성된 프레임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며, 따라서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e스포츠 조명 방식에 대한 근거를 찾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제가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기록될 역사를 조명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펜을 들고 그 처음 문장을 쓰는 작업이었습니다. 왜 어려웠는가 하면 아마도 그 첫 문장을 쓰기까지 이 e스포츠에 대해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틀어 표현하면 이런 것입니다. 과연 나는 이 e스포츠 시대의 스키마를 완벽히 알고 있는가? 이 특정 프레임을 가지고 이 콘텐츠를 소비해온 전형적인 한 사람을 찾을 능력(*수준)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유의 연구 과제를 제출하는 일은 원래 제가 잘하는 일 입니다. 그런데 펜을 들고도 한참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과연 우리 e스포츠에 대한 가치를 어디서 확인하려 할까?' 아마도 이 질문이 저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주어진 업무의 무게에 대한 선한 두려움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전문가이고 여기는 우리의 터전입니다.
그 당시 저의 심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18세기에는 오브젝트에 비치는 빛 대해 받은 인상을 그대로 녹인 작품들이 출시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그 작품들의 예술가들을 우리는 인상파로 묶습니다. 그런데 후기 인상파의 정수가 고흐인 이유는 그가 오직 그 만의 세상을 보는 인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림들을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빛이지만 그 끝은 그 사람 그 자체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수 많은 인상파 화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흐에서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감동을 받습니다. 고흐의 작품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니터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또 아무 관광 코스에 널려 있는 모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많은 돈을 지불하여 오르세 미술관에 비행기를 타고 방문합니까? e스포츠도 하나도 다르지 않고 동일합니다. 결국 사람의 노력에 의해 특정 결과물이 도출되어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개념이 완벽히 서로 같습니다. 음악이든, 회화이든, 조각이든, 건축이든, 사진이든, 아이패드든, 건담 프라모빌이든, 심지어 코스-프레든 모두 같은 개념입니다. 사람이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은 전부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 가치를 확인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에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상파를 배워야 합니다. 둘째 인상파를 어디서 배웁니까? 인상파를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 배웁니다. 우리는 그리고 나야 원본이 보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그 원본을 보는 것에 대한 가치는 이 과정을 통해 정량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그렇듯 회화와 미술사학은 다른 역할을 합니다. 회화는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예술가들의 스키마를 이해한 후 그때 출시 된 작품을 작가 성향과 같은 등등의 기준으로 분류해 회화를 학문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연구 활동입니다. 이 학문은 비교적 쉽게 예술의 본연의 가치를 (*예술의 문외한인 우리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더 깊은 예술의 심오한 세계로 안내하며 형용 불가의 만족감을 줍니다. 이렇듯 당시 스키마를 이해하고 그 스키마의 결과물을 보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결과물을 보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게 되고 그래서 회화와 미술사학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요? e스포츠도 하나의 학문으로 이해하고 시대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글을 쓰는 그 펜이 제가 무거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e스포츠 역사 속에서 과연 무엇을 조명해야 할까요?' 이물음은 결과적으로 그래서 제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3차원에서 다른 3차원으로 넘어갈 뿐 하나의 시공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개념을 인문학에 대입해 이해해 본다면 이전에 임요환과 함께 했던 차원을 같이 보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차원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면 이상혁 선수가 월드챔피언십에서 3번 우승했던 차원을 함께 한 신세대는 임요환이 3연벙으로 승리했던 차원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임요환을 이상혁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기가 힘듭니다. 그것은 임요환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상혁과 비교할 수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두 가지의 차원(사건)을 연결하기 위한 시도가 없다면 그 두개의 차원은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역사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은 각각의 차원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임요환이 레전드인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야 '이상혁이 왜 레전드인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된 대답이란 지금 내가 인정하는 그 레전드 이상혁이라는 개념을 임요환을 레전드라 이해하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e스포츠는 그 판단 기준이 수치에 근거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단일 스포츠 종목에서는 (*분데스리가 100골 등) 산출 기준이 예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의 의미가 덜합니다. 그런데 종목의 변화가 있는 e스포츠에서 '기준이 수치에 있지 않다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상호 연결시키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는 스타크래프트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에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각각이 e스포츠를 행한다는 측면에서는 상호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e스포츠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거나 또 역사를 조명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민감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하기에 단순히 시대별로 우승컵을 몇 번 들어 올렸는지를 적는 것은 가치 고찰적 측면에 있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업이 되어 버립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입니다. 프로리그 100승과 LCK 1,000킬은 같은 가치를 지닙니까?
다른 스키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든 종목과 모든 대회는 이처럼 가치 기준이 각각 다릅니다. 누가 LCK와 스타리그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겠습니까? 문호준은 스타크래프트 선수에 비해 셀 수 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이선우와 배재민은 (*이상혁이 롤드컵에서 그리했던 것 처럼) 전 세계인이 집중하는 대회 EVO에서 몇 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을 하면 할 수록 더 명확해지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을 상호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모두는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서로 정확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가치 기준은 분명 우리 속에 어딘가 있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이처럼 널려 있는 그 수많은 팩트 중에 정확히 콕 집어 임요환과 이상혁을 비교합니다. 이는 e스포츠라는 행위(*회화)와 e스포츠 학문(*미술 사학)이 상호 보완해 나가야 하는 우리의 최종적 목표이자 사명입니다.
과연 우리는 (기록이 아닌) 이스포츠의 역사 속에 감춰져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하나요? 일전에 포스팅 한 바와 같이 개인이 과거의 한 시점에 자신을 기억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그 역사 속에 숨 쉬는 인물이 속해 있는 가장 극적인 상황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터스텔라에서 현재의 책장 뒤에 내가, 과거의 책장 앞을 보는 나를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종의 연구의 결과인) 다큐멘터리는 이런 목적을 잘 수행합니다. 수많은 관중이 모인 광안리에서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팀이 우승하는 2005년의 영상을 SK텔레콤 리그오브레전드 팀을 응원하는 신세대에게 보여주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2015년에 정확히 독일에서 SK텔레콤 리그오브레전드 팀이 우승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 둘은 말씀 드린바와 같이 절대로 수치적으로 정확히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를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비교를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 포스트를 정리합니다. 한 선수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하나의 경기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연습 과정을 거쳐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특별한 빌드를 발견하고, 상상 불가의 경기력을 뽐내었습니다. 그를 열성적으로 좋아하고 따르는 한 팬은,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벅차오르는 감격을 잊을 수 없어 피시방과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소통하고 나누며 그 기억을 간직한 채 당시의 하루를 보냅니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영원의 차원이란 이것입니다. 이것들을 서로 연결하면 시간 속에 잠자고 있는 모든 e스포츠의 가치 세포들이 깨어나게 됩니다. 저와 같은 연구자는 이 차원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 사람에게 이것이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한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오르세에 방문하듯이 그 e스포츠의 오리지널(*원본)을 확인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은 큰 비용을 지불할 것을 확신합니다.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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