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여의치 않았던 이유는 제가 우리 산업의 특정 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 제3자의 입장에서 그 객관성적 측면에 여지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100% 저널(Journal)과 같이 산업내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 온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스포츠 산업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즘) 이 시기에 (다소 Negative하다고 간주 하실 수 있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여 결과적으로 우리 산업의 발전에 이 부분이 저해나 주저의 기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글을 읽으시는 후배님들에게 전달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첫째 우리 산업이 이 문제를 정확히 바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 그 시각을 기반으로 우리 주변에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 설명을 기반으로 바람직한 여론이 조성되어 게임과 이스포츠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붐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야 하는 점입니다.
[게임 중독과 이스포츠]
국립정신건강 센터의 중독정신과장 이태경 박사는 게임 중독은 양적 측정 방법이 없으며, 학업이나 목표 등 질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하려는 시간에 중단을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 일 또는 대인 관계에 문제가 없는가'로 중독의 여부를 점검해 볼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비단 게임에만 적용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결국 기본적으로 우리가 <중독>을 이야기 할 때는 그것은 어디나 언제나 무엇으로든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타당합니다. 비단 게임 뿐 아니라, 일 중독, 운동 중독, 스마트폰 중독, 쇼핑 중독 등 모든 것에는 항상 그 중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경 박사는 청소년이 게임 중독의 빠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중독 질환은 조절력 장애입니다." 조절력은 유전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즉 견딜 수 있는 사람과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유전적으로 나뉘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유전적 취약성은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환경적 요인>이 겹칠 때 문제를 발생 시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 자체가 신경계에 취약성을 보이는 시기라고 거듭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게임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즉 게임이 너무 재미 있는 것 - 중독성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긴 아이들이 이미 취약성을 보이는 시기에 (거기에다 유전적으로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애들에게 더욱 심하게) 일종의 그 문제에 대한 도피처로 중독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빠와 대화 없이 게임만 하는 건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표현법이고, 아침에 집에 덩그러니 남아 게임만 하면 학교 가기 싫다는 표현입니다" 부모와 학업성적에 관한 다툼, 또래 친구들과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 친구들에 비해서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여기거나, 키가 작거나, 가난하다던가 하는 비교 열등의식, 부모간의 갈등 등이 게임 중독을 포함한 모든 중독에 청소년들이 빠지는 원인이 됩니다. 즉 결론적으로 게임 중독에 대한 해결은 게임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막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 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슈는 세대차이입니다. 게임문화재단의 게임과몰입 심포지엄에서 관동대학교 부속병원 김현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세대차이 이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담자들이 게임문화에 대해 보다 잘 알아야 환자들과 효율적 치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는 그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됩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고 배우고 나면 이해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이를 테면 LOL 팀 게임을 한창하고 있는 아이에게 당장 컴퓨터 앞에서 나와서 밥을 먹으라고 말을 한다면 이해도에 따라서 공감이 갈릴 수 있습니다. 타인과 온라인 상에서 조직을 구성하고, 전체 과업 중 일부인 나의 역할이 상호간의 협의하에 주어지고, 실제 그 과정에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그 과업을 실현하고 있는 중에 외압에 의해서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것을 그 엄마가 과연 이해를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한 이슈인가 하면 이가 단순히 설명의 대한 문제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아이가 그의 어머니에게 만일 내가 우리 반 대표로 다른 친구들과 다 시간을 맞춰서 옆 반 대표와 축구 시합을 나가게 되었는데 한창 그 시합 중에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한다면 내가 그 축구 시합 중에 나와서 밥을 먹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 시합을 마치고 와서 밥을 먹는게 맞을까요? 이런 류의 설명을 한다 해도, 그 엄마가 이미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 비유가 서로 일치하는 것이라고 인정을 하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당장 이 글을 부모님께 보여드려도 갑론을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그 아이의 게임중독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인지 그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중앙대 게임 과몰입 치료센터 팀장 한덕현 부교수는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치료하려면 부모들이 먼저 게임 속성을 알아야 한다"면서 "게임 레벨이 올라가야 성취감이 생기는 자녀에겐 게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10시간을 해도 아예 안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즉 아이들에게 "너 오늘 게임을 도대체 몇시간 하는거야? 하루 종일 게임만 할꺼야?" 라는 말 자체가 아이들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라는 설명입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대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또 "이 때문에 하루 3시간만 게임을 하라고 말하는 게 부모에겐 상식이지만 게임 중독 자녀에겐 잔인한 주문이 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게임을 많이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는지, 요즘 아이가 어떤 게임에서 무엇을 실현시키고 싶은지 (그 문화를) 공부하고 나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아이와 무엇을 조율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맞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폭력성, 선전성, 전두엽 손상 등 게임과 신체의 관계, 또는 정신 건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사마다 의견이 갈리나 그 어떤 것도 과학적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중독이라면 이 문제가 치료의 대상이고 그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하는 것에는 이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중독을 무조건 문제로만 보고 그것에 대한 해결로 치료 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게임 중독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는데 그 기준을 소수의 어른에게 맡겨서 아이들 치료센터에 보내 무언가 해결을 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과연 바람직한 방법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박사님들의 배경을 보아도 현재의 게임 중독에 대한 치료는 주로 정신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 많은 우리 아이들은 정신과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되는게 맞을까요?
아마도 그 근본에 우리의 무지가 있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미래의 펼쳐질 아이의 삶에 디지털 디바이스를 제외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아이가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긴 것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 소요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화가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지 알 수가 없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면서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고 믿고 또 믿고 싶었던 할아버지 세대와 동일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TV를 결국 실컷 보면서 자라난 세대는 그 아이들에게 비교적 TV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게임에 대해서는 (TV에 대한 할아버지 세대처럼)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체적으로 우리와 같은 어른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프레임에 아이를 가둬두려는 노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임이나 만화를 보는 것보다 과학책이나 동화책을 읽는 것이 더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책을 많이 보는 아이가 (현재 콘텐츠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게임이나, 영화, 만화, TV 예능, 드라마, 음악 등 모든 부분에서 창작 활동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가 불안을 낳고 그 불안이 보다 더 확실한 것을 쥐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변해 아이들에게 특정 행동을 강요하게 되고 그 행동 외 다른 것들이 도출되면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몰아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오후 내내 책만 읽고 있다면 이건 (부모의 관념속에 기인한, 치료가 필요한) 중독일까요?
재미가 있는 것에 대한 개념도 확실히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 아이가 게임이 없다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만 생각해도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과 공부 사이에 만화, 장난감, 친구와의 딱지치기 등 100개의 공부보다 재미난 거리들이 있다면 그 100개를다 없애야 공부까지 순번이 오는 것입니다. 결국 게임이나 만화냐 장난감이냐의 문제가 아닌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정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아이들와 충분한 협의 없이 구몬이나 눈높이를 해야 한다고 지정을 하고 그것을 왜 안하고 게임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은 아이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게임을 하기 위해서 구몬 숙제 등등 엄마의 지정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상식적으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에 있어 좋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야 할 것을 지정하는 것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노력이 필요하듯 아이의 게임 문화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한 엄마의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중독의 문제는 문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니 문화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특별히 게임은 더욱 그러합니다. 최근부터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건전하게 즐기는 게임문화에 대한 연구가 그러한 이유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많은 연구가들이 이스포츠에서 찾고 있습니다. 한국이스포츠협회의 가족이스포츠페스티벌은 그러한 배경 이론들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해가 거듭 될 수록 그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행사장을 방문하여 게임을 같이 즐기며 소통하고 유대감을 쌓아나갑니다. 아빠는 아들로 부터 클래시 로얄의 미니언 패거리는 화살로 응징하면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2:2 경기를 타인과 하고 있는 것을 체험한 아빠는 그 아이가 팀 전에 임하는 각오와 어떠한 종류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즉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입니다. 집에 돌아와 그 이해도를 바탕으로 그 아이가 서 있는 그 문화를 인정하며 생각과 감정을 서로 공유합니다. 그 동안은 서로 떨어져 있던 아들과 같이 테드의 클래시 로얄 방송을 유튜브로 보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
by erdc.kr
구마태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 콘텐츠로써의 이스포츠의 본질과 그 표현 (0) | 2017.07.11 |
---|---|
게임과 이스포츠 (그리고 스포츠와의) 관계 (0) | 2017.06.30 |
소니-오토바이 게임으로 e스포츠 확장 (0) | 2017.05.18 |
유타대학, 게이머에게 e스포츠 연구위한 장학금 결정 (0) | 2017.04.08 |
인도 루트 모바일, e스포츠에 110억원 규모 투자 결정 (0) | 2017.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