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개인이나 단체의 능력을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전체 산업의 성공과 방향을 놓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런 유의 사고는 기본 전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이 개인이나 특정 조직의 감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정확히 사료화 되어야 하고 매번 검증되어야 하고 가능한 한 데이터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유산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는 모르는 외부의 누군가에게 우리의 가치를 설득하는데 있어 그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저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설명하는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 방식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왜 그 방식이 현재로써는 옳은 것인가?
이 글을 읽는 후배님들은 최소한 이스포츠라는 것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속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 그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 각각의 방법들을 어떻게 찾고 조명하고 가치를 검증해야 하는지 알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이를 모르면 여태껏 스스로 화려한 역사를 이루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누군가들에게는 크게 눈의 띌 것이 없는 우리 만의 리그의 그네들로써만 남게 됩니다. 우리는 카메라나 자동차와 같이 기술에 발달에 따라 더 나은 기계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언가에 활용하기 위한 용도나 먹는 거라던가 입는거라던가 하는 (그런류의) 내 손에 즉시 잡히는 실물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만일 누가 우리 이스포츠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또는 산업의 성장에 따라 문화의 소비 패턴이 이러한 형태로 변경되어 왔다고 설명 한다면 이는 심하게 전형적으로 전근대적이며 문화의 속성을 철저하게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다 심도 깊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는 이스포츠는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요? 그 속에서 과연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누가 떠오르시나요? 왜 떠오르고, 나는 그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며, 그 장면의 다양한 모든 구성원들이 각각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있나요? 그리고 그게 왜 굳이 뇌리에 박혀 있나요? 우리는 우리 이스포츠를 말할 때 항상 이러한 유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컨셉 회의에서 여러분은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답변은 영상을 편집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나 경기장면을 담을 때나 등 전달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모든 행동들에 모두 동일되게 적용해야 합니다. ICT 융합 컨텐츠의 가장 훌륭한 레퍼런스인 이스포츠는 더욱이나 특별히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고가 이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바탕으로 (데이터화가 가능한) 실질적인 정보를 만들어 내야 하며, 그 정보를 어떠한 기술로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분석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 일입니다.
문화적 접근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우리가 감정이입이 되는 이유는 당시의 문화 현상을 시기적으로 나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러한 문화 속에 있었던 이유는 고성능 TV가 모두에게 보급되고, 아이돌이라는 것이 나왔고, 인터넷이 출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HOT를 추억하는 것은 그들의 음악 프로그램의 몇 번 우승과 연말의 상들의 기록이 아닙니다.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다가 MP3 플레이어로 전환이 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당시의 그 HOT를 이해하는 당시 문화를 즐기고 있던 '나' 를 추억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문화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투영되고 있는 주인공을 볼 때 나는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고 감수성에 젖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들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문화 콘텐츠로써의 이스포츠 역사를 비롯하여 몇몇 주요 주제에 대한 비주얼적 표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우리가 우리를 설명하는 데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이해시키는 것 자체가 진실로 큰 난관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텍스트나 팩트가 담긴 편집 영상이 아닙니다. 단 한 장의 비주얼에 그 당시 감수성을 온전히 담아 내고 그것을 추억한 후 예상되는 디테일들을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다음 화에서는 또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어떠한 추억을 내게 건네 줄까? 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간단히 정리 드리면, 역사의 한페이지를 떼와서 지금 단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 당시 그 문화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다른 설명들은 부수적이게 됩니다. 막말로 누가 어느 경기에서 어떻게 이겼고 어느 상을 받았는가하는 기록들은 전부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 당시 어디서 누가 나에게 어떤 경기로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그 감동을 지금 내가 어떠함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는가가 핵심입니다. 최근 OGN의 호나우두/이상혁(페이커)의 콜라보 영상은 정확히 이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문화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고증할 때는 철저히 소비자 중심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문화의 주체인 소비자의 가치 절대성 때문입니다. 문화에서는 소비자가 이스포츠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더 중요한 조명 방법은 없습니다. 즉, 이전에는 어떤 모니터를 써왔는데 지금은 어떤 모니터를 쓴다라든가, PC방이 출현했다던가, 방송 플랫폼이 케이블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다던가, 어떤 선수가 몇 년도부터 몇년도까지 몇회 우승을 했다 던가, 어떤 게임이 출현해서 어떤 대회가 치러졌는지 등을 단순 나열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소비자적 접근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핵심 관심사도 감동을 줄 아이템도 아닙니다. 이는 그저 이스포츠를 산업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지 문화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 이스포츠 문화를 산업과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화 산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그러한 기술이 출현해서 또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서 이러한 문화가 뒤따라 왔다는 설명 방식은 이스포츠를 단순히 설명하기 좋은 목적을 위해 한 방향으로 나가는 모양으로 짜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명백히 말씀드리면 이스포츠는 (또는 이스포츠 문화는) 당시 그 시대를 철저히 조명하는 것이라 어느 방향으로 왔다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그 방향성 자체가 없습니다. 이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에서 LOL로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 이스포츠 문화가 있었고 지금 LOL 이스포츠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상호 가치를 비교 할 수도 일괄적으로 정의 할 수도 없습니다. 정리하면 하나의 줄을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역사 여행을 하는 방식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스포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포츠의 역사는 당시 그들이 즐겼던 특수한 문화의 시대적 나열이라고 봐야지 발전 경로의 고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포츠에 대한 체험은 선수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포츠 문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포츠가 전통 스포츠와 가장 큰 차이점이고, 왜 우리가 때로는 엔터테인적인 요소도 함께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자 팬들은 남자 아이돌의 활동을 체험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SM타운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아이돌을 체험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PC방에 가서 경험 할 수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경기장 부스에 꼭 앉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둘째 이스포츠에 대한 체험은 무언가 실물을 내 눈과 손으로 맞닥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1년 365일 이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구장이 없으면 야구하지 못하는 현실과 다르게 언제 어디서든 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특색있는 유니폼도 없습니다. 간직하고 싶은 장비가 있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게임 외로는 유니폼이나 장비가 (행여나 이스포츠의 퍼포먼스를 발현하는 실질적 도구라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주목하는 가치적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포츠를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앞으로 경험할 이스포츠의 미래 기술의 일부를 그대로 구현해오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지나간 이스포츠를 추억하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행여나 미래 기술의 일부를 완벽히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쨌거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스포츠의 대한 감동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핵심은 미래든 과거든 현재든 내가 잊고 있었던 이스포츠를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을 사람들은 희망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스포츠를 좋아했을까? 남들 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 아이돌이 좋아서 아이돌을 쫒아 다닐 때, 나는 왜 그 선수에 미쳐서 그 선수를 보기 위해서 경기장에 방문 했던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질문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저 편하게 방문한 소비자에게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이스포츠 체험에 대한 해답입니다.
저는 꿈꾸고 있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임요환과 그 시대를 그릴 수 있는 감동적이고 크리에이티브적인 비주얼적 표현을 아이에게 익숙한 최신 기술로 감상하면서 당시 엄마의 젊은 시절과 추억을 설명하고 있는 그 장면을 매일 밤을 날이 새도록 꿈꾸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스포츠는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의 역사에 선수라는 조연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이스포츠의 선수의 도구 중 하나이지 그 게임 내 세계관이나 음악 그 자체가 이스포츠를 설명하는 배경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 다해 최소한 후배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기를 희망합니다만 최근에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아직 업계 외 관계자들의 이해를 위해 준비된 것이 없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우리 이스포츠의 당면한 현실과 이스포츠에 죽을 때 까지 남아서 향후 만들어갈 모든 종류의 유산을 봐야 하는 사람의 몫인 것으로 생각 됩니다. 오랜만에 아래 짧은 영상을 찾아 이스포츠 문화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생각하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봅니다.
by erdc.kr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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