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적으로 시리즈로 기획된 글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계획에 없었던 시리즈를 작성 중입니다. 선수가 운 것도, 디아블로를 발견한 것도, 제가 좋아하는 한 분의 고민을 듣는 것도 전부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이처럼 계획에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설마 그러겠어하는 일들이 곧 잘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골머리가 아픕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일 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정도를 걸어야 나중에 탈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생은 지금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역리로 버티다 보면 완만하게 내려올 수 있는 기회조차도 잃어버립니다. 어차피 내려올꺼라면 이라는 역리든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말은 이런 경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한 번에 푹 꺼지는 그저 결론적으로 진실이 아닌 거짓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대의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불신은 의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불신은 나쁜 것이지만 의심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의심은 신뢰 찾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의 반대말은 신뢰가 아니라 의심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신뢰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사기입니다. 어떤 기업이 한번 신뢰를 잃으면 그 이후에 선행을 아무리 많이 해도 사람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절대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확실한 개념입니다.
저는 이 불신이라는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자 할 때 일종의 '병'과 개념이 같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저 가만히 두어도 자가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그의 췌장암이 자가 치유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을 이와 같이 말합니다.
"모든 불치 병의 거의 유일한 가장 확실한 원인은 '방치'이다."
제가 정말 확정적으로 말씀드리면, 불가항력적으로 신뢰를 잃은 조직의 대부분의 리더님들은 대게 이런 상상을 하십니다. '이제부터 묵묵히 열심히 하면 되겠지!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물론 이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 자체는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절대 상황이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자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가 봐! 췌장암이 자가 치유될 것이라고 믿었네. 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보다 훨씬 똑똑한 듯하다. 나는 스티브 잡스와 다르게 내 몸을 잘 알거든!! 요 며칠 소화가 좀 안되는데 스트레스 때문인 거 같아. 주말에 하루 푹 자고 나면 괜찮아져!"
저런 이런 화법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알아챌 수 있는 화법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소 힘들겠지만 이 문장도 한번 말해 보시면 좋습니다.
"나는 우리 회사를 잘 알아, 지금 좀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는데, 내가 사회를 사랑하고 아끼고 일하듯, 지금처럼 묵묵히 열심히 하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거야, 불신이라는 그것, 푹 자고 나면 자가 치유될 거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순진하시면 안 됩니다. 개인의 순진은 가치이지만 조직의 순진은 결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더더욱 강조드리면 어떤 조직이든 세상을 잘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코 융통성 따위가 아닙니다. 또 이것은 정도(正道)의 개념으로의 접근할 주제가 아닙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지혜입니다. 그래야 의사 선생님이 "왜 이제 오셨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그 지혜를 가진 자를 찾으셔야 합니다. 그를 옆에 두셔야 합니다.
만약 어떤 기업이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면 먼저는 의심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프기 전 단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 단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픈 이후에 했던 모든 것들을 전부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RPG 게임 서버 롤백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래서 그 결정을 하기가 여간해선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 결정을 빨리 해야 합니다.
기업에 적용해 보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 기업이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신에서 의심의 상태로 가기 위한 가장 첫걸음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디에서 우리가 왔는지 그 근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원래 자리로 즉각 돌아가야 합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그 즉시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또 무슨 꿍꿍이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 일을 합니다.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한 기간 동안, 다소 불합리하더라도 감내해야 하는 것을 묵묵히 감내합니다. 그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도 한참이 지나야 사람들은 그 조직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명의 조직의 대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세련되게 보여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내해야 하는 기간을 당기고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런 대표는 더 이상 그저 대표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지로, 리더라 칭해야 옳습니다.
의심의 본질은 신뢰를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의심을 한다는 것은 사실을 알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사실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맹점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맹점 중에 가장 큰 맹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이 그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이라고 말을 해도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심의 본질이 신뢰를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는 무엇이냐면 자신의 생각을 믿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보고, 본 그대로 믿고,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의심의 단계에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노력이란 예상과 그 예상에 따른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한 예시를 보여드리면 저는 아들과 집 밖을 나가기 전에 아들에게 항상 거실 등을 소등했는지를 묻습니다. 어린 아들은 소등을 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몇 번 집에 들어와 정말 소등을 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어리기에 그 말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나중에는 정말 소등을 하지 않아도 소등했다고 말하면 믿습니다.
현명한 리더는 소등하라는 이야기를 세상이 다 듣도록 하고 그 소등이 된 것을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조직이 소등을 하는 것을 의심하게 하고 반복적으로 소등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뢰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는 인격적 활동입니다. 인격적 활동이란 조직이 마치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조직이 마치 내 친구인 것처럼 내게 다가온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다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친한 누군가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제부터 조금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도록 합니다. 제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지성이입니다. 어느 날 집 앞에 서 있는데 한 동네 아이가 지나가면서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성이가 지금 막대기로 들고양이를 때려요"
저는 아직 지성이를 만나기 전입니다. 또 다른 아이가 지나가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면서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매우 화가 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 못 하는 동물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더군다나 약간 존재를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은 죄질이 나쁜 것이라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 쪽에서 지성이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아이를 부릅니다. 당장 이리로 달려오라고 지성이에게 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강하게 묻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들고양이를 때렸는지를 큰 소리로 다그쳐 묻습니다. 그런데 지성이은 의외의 대답을 제게 합니다.
"나 그런 적 없는데..."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저는 지나가는 누구와 어떤 어르신도 네가 그러는 것을 봤다고 했는데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지성이는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나 아니라고 하자나, 내가 아빠 아들이 자나..."
여러분은 누구를 신뢰합니까? 물론 이 글의 초점은 우리의 신뢰는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짓말을 하는 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오늘 이 신뢰라는 것의 맹점이라면 맹점이고 본질이라면 본질을 분명히 파악하셔야 합니다. 조직의 인격적 활동이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님을 기억합니다. 신뢰라는 단어에 한치에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분이 남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진실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오늘도 고통 가운데 여러분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개를 드시고 멀리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불신이란 극복이 안되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저 지혜가 필요한 주제일 뿐입니다.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끝에 웃는 자가 진정 웃는 자입니다.
by erdc.kr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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