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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유

오늘 말씀 드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또 공동체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이다는 말도 좋아하지만 공동체적이다는 말도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는 상호 모순적입니다. 모순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단것이 좋으면서, 쓴 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모순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순이야 말로 본질이며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인 것이야 말로 인간과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변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이기에 오늘의 이 글은 그렇게 모순적으로 나와 우리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저는 오늘 살짝 눈물이 났습니다.

결승전 인터뷰에서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어린 선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아무리 봐도 항상 덤덤해지지 않습니다. 처음 E스포츠를 좋아했을 때도, 2016년 더 이상 E스포츠 업계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도, 2017년 'ERDC'를 설립했을 때도, 그리고 2020년 오늘도 늘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하고 늘 눈물을 흘리는데 늘 새롭습니다.  늘 이때가 되면 이 이유가 아직도 여기에 제가 있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이 새로운 우승 소식을 전하는 많은 우리들도 다 같은 마음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집에서 작은 모니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이 세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그 시간 저와 같은 감정을 지닌 우리 모두를 한 번에 바라볼 그 광경은 또한 매우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지극히 공동체적입니다. 

 

 

공동체란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물리적인 영역(Boundary)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오늘 일어난 일이니까, 일로써 이 소식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영역의 관점에서 보면 - 그저 일로 그 일을 전하는 사람들은 - 우리 산업 종사자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저는 그 사건에 대해 - 제가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의 벅참 감정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 같은 공동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보면 아무런 소속도 보수도 없이 순수히 자신의 의지로 그 소식을 전하는 후배가 우리 공동체에 속해 있는 일원입니다. 그 후배들이 저의 후배이며 'ERDC'에서 사용되는【후배】이 단어는 모두 오직 이들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제게는 전부 외부인입니다. 즉 우리를 위하는 외부인과 우리를 이해하려는 외부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히 제가 사용하는 단어 '우리'는 저의 후배들과 동일한 이해와 감정을 가진 선배님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지어지게 됩니다. 즉, 우리는 - 선배든 후배든 혹은 어디에 위치하든 -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 '우리'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다 라는 말을 하게 될 때는 그것은 절대로 단순한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외부인들은 '선수가 멋진 실력을 내면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고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행여 우리에게 투자할 외부인들에게 우리를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수가 멋진 실력을 내고 우승을 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같이 눈물을 흘릴 때, 그 선수가 벌어다 줄 이 바닥의 돈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누구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그 순간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순수히 이해와 감정에 따라 울어도 되는 그 좋음을, 굳이 버려가며 안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감동이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 울어도 되는 그 좋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개인이 좋은 그 좋음을 공동체적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동체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직역적으로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말은 타인에게 전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만이 아는 것과 같은 이 비밀을 도저히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에 불타오릅니다. 우리는 이 사회적 가치를 세계에 전하여 우리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더 이 가치가 빛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밝은 빛이 나면 더 많은 재화가 있게 되고 더 많은 재화가 있어야, 그것을 다시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더 많은 재화를 얻은 선수들은 더 노력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이 멋진 선물을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자리가 사무국이든, 방송국이든, 매체이든, 심지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느 방한 구석이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감독, 코치, 선수가 아니면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는 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이토록 열심히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 긍지를 다시 한번 그 마음속에서 일으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가치가 있는 것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선수로부터 받은 감동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저는 E스포츠가 여타 다른 스포츠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더 좋습니다. 우리 선후배님들 중에는 야구를 좋아시는 분들도 있고 농구를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페이스북에서 그분들이 E스포츠는 크게 올리지 않은 채, 여타 스포츠를 올리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면 매우 질투합니다. 마치 내 남자 친구가 같이 TV를 보면서 거기 나오는 여배우나 여가수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 한 질투심입니다. 그들이 예쁜 것이 사실 인 것처럼 축구 야구 농구가 재미있는 거 알고 있고 진실입니다. 진실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질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질투했고 앞으로도 질투할 것입니다. 다분히 E스포츠 만을 더 예뻐해 달라 그 말입니다. 물론 그저 질투한다는 것이지 싫어하거나 미워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을 내리면 저는 이 글을 읽으실 우리 후배님들에게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은 마치 상당히 쉽게 쓰인 것 같아 보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분이 익히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 이 E스포츠 가치의 매우 핵심적이고 본질적 이해를 지극히 학술적으로 (*또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증명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제부터는 늘 또 항상 어깨를 활짝 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by erdc.kr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