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무국으로 일 할 때 마산에서 올라온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산은 제가 태어나 약 6개월을 산 곳이고 제 아버지의 고향이기에 어린 시절 자주 갔던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지명을 듣는 순간 옅은 미소와 함께 한번 더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감독님은 그 아이가 아무무 잘하는 플레이를 보고 온라인으로 연락을 했고 오프라인 테스트를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으며, 희망하기에 올라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가장 전형적인 선수 수급 방식으로 지금도 많은 팀들에게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는 이제 막 18살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쪽 끝에 있는 지방 소도시에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대도시 서울, 그것도 일산까지 올라와서 생활도 적응하랴 테스트도 보랴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수가 너무 적은 아이였습니다.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갑자기 한 타를 열어, 팀 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아이라고 감독님은 평가하셨습니다. 그래도 감독님은 며칠 동안 연습실에 데리고 있으면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점을 고치지 못하면 테스트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고도 아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테스트를 합격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고향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유독 관심이 갔기에 지내는 기간은 짧았지만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서 아이에 대해서 상당 부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2명이었고, 부모님은 (*대부분의 그 또래 아이의 부모님의 그렇듯) 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계시고, 그러함에서 불구하고 일산에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특히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감독님이 그 아이 아버님의 전화를 몇 번이나 직접 받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사무국으로 일을 하면서 선수들의 부모 전화를 많이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아들 하나 딸 하나, 두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입니다. 어찌 그 아이가 그저 게임을 하는 도구로 보이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와 나이가 같은 그 감독님은 인정이 넘치는 분입니다. 그러한 우리 팀과 이 사회가 어찌 사람을 일로만 보겠습니까? 다 받아야 합니다. 모든 전화를 다 받아야 하고, 그 아이의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낮을 가리는 아이를 부모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그 아이가 서울에 오겠다고 결심을 한 것도 대단한데, 그 아이를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어찌했을지 당연히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내 눈에는 성실하고 심성이 착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의 세계에서의 테스트 결과는 나와 감독님을 포함하여 누구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선수에 대한 선발은 대체로 감독님이 결정할 사안입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모든 애들에 대해서는 리포트가 올라오지만 돌려보내는 아이들에 대한 내용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사무국인 저에게는 남는 아이들만 알려집니다. 물론 제 윗 분들에게는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 경우에나 알려집니다. 무언가 일이 바빠서 한동안 연습실에 방문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가보았는데, 그 아이는 이미 내려간 후였습니다. 진실로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팀 매니지먼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시점에 왜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일과 사람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지만, 이 부분을 자주 망각해서 자주 사람을 대하는 저의 자세가 그 사람을 하나의 상품 또는 하나의 일로 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저는 8게임단이나 스페셜포스 게임단을 운영할 때 많은 아이들과 계약 해지를 직접 한 장본인입니다. 그중에 대다수는 재 계약을 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바로 계약 해지를 했고, 재계약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도 매번 전 시즌 결과에 있어 긍정적인 반영을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상황에 비추면 도무지 정상적이지 않은) 그 일을 그것도 몇 년이나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그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이라고 생각해도 매번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소 심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계약 조건을 보면서도 (*상황을 알기에) 상당히 덤덤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제 앞에서 엉엉 우는 애들도 있었고,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패닉에 빠지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한번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기본 8시간 이상씩 상담을 했고 말을 많이해 목이 계속 타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셔, 나중에는 위가 다 아플 정도였습니다. 이 때가 e스포츠 위기의 시절이었는지를 물으신다면 (*저는 인정하지 않지만) 세간의 시선에는 맞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가 맡은 소임은 충분히 힘든 일임에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 법입니다. 당시 아이들과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근거는 아직도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그 사실(*그래서 저는 위기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과, 그 사실을 기반으로 창단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꿈꿉니까? 반대로 이야기하면 왜 저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일로써 아이들을 대하지 못했던 것입니까? 그것은 어쩌면 모든 일에 있어 우리의 자세가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는 그 대전제를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부 인재다. 우리는 늘 인재를 대하는 것이고 인재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일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생각 없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제가 가진 모든 재능을 쏟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창단의 기쁨을 온전히 온 마음을 다해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일이라면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시기적으로 마산에서 일산으로 올라온 아이는 이미 진에어 그린윙스라는 팀으로 창단이 완료된 이후 시점입니다. 그 아이는 감독님과 소속 선수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진에어 그린윙스 시절까지 버텨왔는지를 모릅니다. 오직 소속 선수가 되면 최선을 다해서 유명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감독님과 저는 아마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결정권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 아이는 단순히 재능을 가져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한 목표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팀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고 무슨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기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에 그 아이를 유망주이기 전에 꿈을 이루기 위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송하지만 여기는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팀 매니지먼트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팀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까? 2016년에 작성한 이 맺음말을 다시 에디팅 하는 시점인 2019년 2월에 이 팀을 다시 돌아보면 리그 내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눈에는 이 팀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오해하지 말 것은 저는 지금 프로팀이 성적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성적을 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지금 우리 팀이 성적을 내고 있어도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입니다. 왜 우승을 하면 기쁩니까? 적어도 우리는 이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진실로 진실로 그 대답이 사람과 사회와 관계 속에 있는 대답이기를 기대합니다. 즉, 모든 것이 감사였으면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감사.
동일한 질문을 드립니다. 만일 우리가 팀 매니지먼트 사업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입니까? 물론 맞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아 더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까? 이 질문은 계속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팀 매니지먼트 사업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 시점에서 일본에서 돌아온 후배는 술자리에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배 된 사람으로서 그 친구에게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가 물론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건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는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이 산업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지 말지는 둘째고 지금 당장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하다'입니다. 이 생각의 가장 명확한 발현이 물을 흐리는 에이전시입니다. '선수를 뺏어서라도 내가 팔아서 이익만 얻으면 된다'입니다. 다음은 '나는 사실 e스포츠를 너희들 만큼 좋아하지도,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다'입니다. 즉, 돈벌이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스포츠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좋아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확실히 우리가 좋아하는 e스포츠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이러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만나시면 먼저 그 생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고, 그래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곁에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저는 선한 뜻을 품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한 뜻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e스포츠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희생하고,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e스포츠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야 합니까? 그것은 이것이 우리가 계승하고 여태껏 발전해왔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떠한 기로에 서있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그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이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 e스포츠의 발전에 기어하고 있는 것입니까? 늘 반복되는 대기실 선수 짤을 팀 공식 페이스북을 올리는 일을 오늘도 어김없이 하더라도,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항상 명쾌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그들과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절대로 수단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수단이 목표가 되면 약자가 희생됩니다. 우리 감독님은 아마도 첫날 그 아이를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아이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독님이 실제로는 불필요하게 그 아이에게 가능성이라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판단합니다. 그 감독님을 찾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조언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그 아이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까? 이러한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지금 손이 많이 가는 그 팀 원을 다독여야 합니까? 단순히 그 팀 원을 구슬리지 않으면 내게 피해가 오기 때문입니까? 수단이 목표가 되면 기회가 오게 될 때 우리는 냉정하게 사람(*약자)을 내치지만, (*선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되면 팀 원들이 그 팀을 사랑하게 되고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리더십을 느끼게 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온 우리 e스포츠는 그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e스포츠가 그러하듯 e스포츠 팀 매니지먼트도 여기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그토록 이해하고자 하는 이 팀 매니지먼트 사업에 대하여, 과연 무엇이 선한 뜻이자 목적인가요? 그래서 당연히 그것은 그러하기에 더욱더 '사람 중심의 경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 속에서 우리가 e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구성원 간에 지속적으로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그래서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약자를 배려할 수 있고 조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큰 사고를 당했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삶에 대한 가치관이 그 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에디팅 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 주제 이후에, e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왜 e스포츠를 좋아했고 또 여기서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 것인지를 하나씩 같이 찾아가 봅시다.
by erdc.kr
associate with bigpi.co
2019-02-09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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