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현재 어떠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딸 지아는 아직 어려서 한글을 거의 모릅니다. 그렇지만 터치로 유튜브 앱을 실행시킨 후 음성인식으로 "번개맨"이라고 말하고 곧 능숙한 솜씨로 썸네일을 보면서 보고 싶은 모여라 딩동댕 영상을 실행시킵니다. 그러한 환경이 없었던 적이 없었던 우리 딸에게 거의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전통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사실 어려워 보입니다. 이를 테면 "TV와 같은 전통 미디어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라고 내게 말한다면 저는 딸이 소비하고 싶지 않아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인에게 전화기를 옆에 둔 채 직접 찾아가서 별거 없는 내 말을 전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소비할 때 중간에 좀 지루한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스킵하고 결론만 먼저 확인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아는 짐짓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스크린 앞에 가서 터치를 한 후 동상상 플레이어 인터페이스가 뜨면 아래 바를 터치하여 주욱 오른쪽으로 밀어내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지아는 (재미있는 부분은 계속 보지만) 재미가 없는 부분은 항상 스킵할 수 있었던 상태로 콘텐츠를 소비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타블릿을 잡고 아주 능숙한 형태로 보고 싶은 것을 휙휙 넘겨 보거나, 빠르게 다음 동영상을 실행시킵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 있던 와중에도 다음 동영상을 실행시키는 것에 주저가 없습니다.
처음 TV로 유튜브 영상을 실행시켰을 때 우리 지아는 실제로 TV 앞에 뛰어가서 TV 액정을 터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왜 터치 기술이 적용이 안 되는 가에 대해서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 가전제품에 구현된 기술의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TV란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분류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지아에게 인터넷과 터치가 되는 TV를 제공한다고 해도 지아는 이것을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아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이해한다면 이 모든 것은 다 당연한 것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조절할 방법은 없습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2017년 기준 국내 유튜버의 수익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면에서) 그 결과는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1,2위는 장난감(캐리 등), 3위는 게임(도티), 4위는 실험(허팝)으로 상위권 모두는 아이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입니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의 주 소비층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 아이들은 그대로 자라 가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현재보다 심화된 방식으로) 계속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계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5위 대도서관(게임), 6위 악어(게임) 7위 벤쯔(먹방) 8위 대정령 TV(게임) 9위 김이브(연예상담)의 결과도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전통 미디어가 더 이상 왜 필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이제는 집에 유선전화가 왜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집에는 유선 전화가 없지만, 우리 아버지 댁에는 아직 유선 번호가 있습니다. 먼 미래에 우리 딸 지아가 독립할 나이가 되어 새로 집을 구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케이블 TV나 IPTV를 신청할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나(*할아버지)는 어릴 적에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려면 몇 날 몇 시에 어떤 프로가 방영한다는 스케줄표를 보고 물리적으로 한정된 장소인 거실에 앉아서 TV를 틀어 놓고 기다렸다고 하면, 그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어색한 방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아이들이 미래를 살려고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새록새록 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제 나이 때쯤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에게 '이제 곧 물을 사 먹을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도저히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게 TV는 바보상자라서 계속 보면 바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부인님은 우리 아들에게 그렇게 계속 핸드폰만 보다가는 핸드폰 중독에 빠질 거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지아는 먼 미래에 존재할 제 손자에게 그렇게 계속 가상현실에만 있다 보면 정신이 돌아버릴 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이 발전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아이들은 콘텐츠라는 것을 어떻게 소비하게 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상은 추가로 아이들이 미래에 어떤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구현해야 하는 복합 콘텐츠 문화 공간에서는 이 두 가지 테마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소비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거주하게 될 공간의 구성을 통해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생활에 어떠한 기술이 적용될지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전부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더 빨리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 도달하게끔 지원하거나, 우리 아이들이 더 감각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거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미래에 소비할 콘텐츠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공간입니다. 이로써 아이들은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스포츠를 소재로 본다면 우리는 이 소재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으로써 이 두 공간을 채울 수 있습니다. 1) 아이들은 미래의 이스포츠를 어디서 어떤 기술로 소비하게 될까? 2) 아이들은 그 기술로 보일 이스포츠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만약 지아가 제 나이가 되어 지아와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게 된다면, 둘이 같이 가상현실 속으로 진입해 디지털 세상 속에서 구현된 아레나를 방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들! 엄마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하털을 타고 강남역에 있는 넥슨 아레나에 방문해서, 이렇게 생긴 경기장에서, 이런 경기를 보곤 했었어,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가상현실에 들어와 가상 아레나에서 이렇게 경기를 보고 있네!"
우리는 당연히 지금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이 가상현실을 그대로 구현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미래의 경험 중 일부를 현재로 가져와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1) 제삼자가 되어서 누군가가 그것을 체험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끔 하는 것, 2) 그 과정 중에 실제로 일부를 터치해서 작은 부분이라고 실행을 체험해 보는 것, 3) 보여 줄 수 없는 것을 상상하도록 부연 설명을 귀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공간은 거실이 될 수 있고, 경기장이 될 수도 있고, 촬영 장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고, 여행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3편에 걸쳐서 '아이들을 위한 복합 콘텐츠 문화 공간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전국 곳곳에 많은 기관들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주제의 전시관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방문하면 방문할수록,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는 결과적으로 이 철학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이와 같은 철학을 반영할 장소를 만들어 주시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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