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아이들은 그들의 사고에서 디지털 콘텐츠와 일반 콘텐츠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레고를 사용해서 집을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인크래프트의 세계에서도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어른들은 둘을 다른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그 둘은 동일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우리 어른들에게 집이란 실제 사람이 거기 들어가 살 수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짐짓 사이버 세상에서 사이버 내가 들어가서 사는 곳도 집이라고 생각하며 (*이 둘은 똑같이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그것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표현하는 저도 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좀 더 심화시켜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 세상에서는 좀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제 세상에서 좀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실제 세상에서 좀비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어른들에게 물어서 확인합니다. "아빠 좀비가 있어?" 그러나 어른들이 이 세상에는 좀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인크래프트 세상에서 좀비가 허구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디지털 콘텐츠의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허구라고 설명해 왔지만 아이들은 그것은 그저 실제 하는 디지털 콘텐츠이지 우리처럼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구입하는 세대 전에 살았던 어른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편견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핸드폰 게임 속에 존재하는 디지털 펫은 실제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해서 가치가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여전히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펫의 구입에 대한 가격 저항선은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구매가 가속화되면서 많은 어른들은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게임을 구매할 때 굳이 실물 CD를 받을 필요가 있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는 크나 큰 변화이며 매우 빠른 속도로 전 세대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콘텐츠가 만연한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요? 앞서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이들은 디지털 콘텐츠와 일반 콘텐츠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치에 대한 편견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볼 때 유튜브에서 결제를 하든 극장에서 돈을 주고 결제를 하든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웹툰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웹툰을 돈을 주고 결제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유로 게임을 다운로드하여서 노는 것과 실물 로봇을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서 그저 논다는 것 외로는 구분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VR플러스에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VR 기기'를 쓰고 3분 남짓한 콘텐츠를 즐기면서 적게는 5천 원에서 많게는 1만 원이 넘는 금액을 쓰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들이 극장에서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엄마는 되도록이면 만화도 실물 책을 사서 보기를 원합니다. VR플러스보다는 에버랜드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는 하루 종일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보는 콘텐츠가 미래의 아이들의 삶에 있어 더 유의미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혹시 우리의 착각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어쩌면 소재와 관련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형태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만 아빠와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사실에 더 가치를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하기에 더 철저히 아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그 이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아들 지성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아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아이가 속한 세계는 제가 속한 세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글과 이전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행여 제가 이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 대해서 (*특히 이스포츠) 잘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들이 하고 있는 게임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이건 뭐고 저건 뭐냐고 물어보면 이것저것 대답해 줍니다. 그런데 이내 아빠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최근) 이스포츠가 포함된 복합 문화 공간을 창조하는 것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교육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학이나 영어나 과학과 같은 (*과거 우리가 지향해 왔던 형태의) 지식의 습득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펼쳐질 세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가'에 대한 배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것들에 둘러 쌓여, 무엇을 누리면서 살게 되는지를 배움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의 우리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할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세상이 없었던 과거에는 이러함이 필요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물리적인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0 원더 키디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2020이 와도 그리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서 미리 배워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제가 보아오던 제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책상에서 두꺼운 전공 서적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아들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은 (전공 서적 옆에 있는 무지 노트에 손으로 글을 쓰던 제 아버지 대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일 듯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제 손자는 우리 아들의 어떠한 모습을 보게 될까요? 물론 실제 세상에서는 큰 차이 없이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아버지와 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그 결정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의 자신의 모습의 일부를 현재에 끌어와 보여주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필드가 이스포츠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복합 콘텐츠 문화 공간에 일부 미래형 이스포츠 스튜디오를 구현해 아이들에게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어떨까를 고민해 봅니다. 그것은 최근 여기저기 만들어진 어린이 박물관의 VR 체험과 같이 가상현실의 게임을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VR 기술을 통해 미래의 사람들이 이스포츠를 어떻게 소비하는 지를 보여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실제는 날아가지는 않는 로켓 모형에 앉아서 달나라를 여행할 미래를 꿈꾸는 것과 동일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난 후에도 달나라에 갈 수 있는 기술이 구현이 안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은 반영해 낼 테니 말입니다. 그것인 디지털 콘텐츠의 세상에서라도 말이죠.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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