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스타는 더 이상 본래의 의미는 없어지는 행사로 보입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전통적인 형태의 전시(Exhibition) 산업이 (이전에는 유망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사양 산업인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트레이드 지원 기반의 전시 산업이 잘나가서 그 덕에 'Kotra'도 재미가 쏠쏠했지만) 이제는 특별히 거기 가지 않으면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것을 살수도 없는 그런 가치가 있는 전시회가 아니면, 이런 전통적인 형태의 전시회의 필요성에 대한 저의 회의감은 더더욱 심해집니다.
게임회사들이 큰돈을 들여 (그것도 서울도 아닌 부산에 내려가) 전시 부스를 꾸미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시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 와서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늘 그렇게 해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는 걸까요?' 이번 지스타는 배틀그라운드가 사실상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배틀 그라운드는 시연이 필요한 신작 게임도 더 이상 추가 홍보가 필요한 게임도 아닙니다. 그저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개최를 통해 이스포츠 진출을 위한 테스트 및 소비자 서비스에 일환이었습니다. 배틀그라운드를 생각해 보면 지스타는 결국 게임사 입장에서 신작을 내 놓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없고, 홍보를 하는 차원도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스타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강렬하게 떠오르는 참가 이유가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올해 지스타는 냉정하게 볼 때 배틀그라운드를 필두로 하는 이스포츠가 아니었다면 이정도 성과도 장담을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집객에 있어서도 수능이 일주일 미뤄진 것을 (조직위와 언론이) 걱정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크게 볼게 없어도 동네 자체가 그것 외로는 특별히 할게 없어 행사장을 찾는 것은 더 문제입니다. 행사 자체가 경쟁력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면 뭐가 두려웠을까요? 혹은 기대감에 대한 배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 증거가 뭐냐면 오늘까지 신작 시연에 있어 파격적인 조명이 들어 있는 기사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엄살 조금 보태서 트위치와 WEGL, 그리고 배틀 그라운드가 서울에서 컨소시엄으로 이스포츠 대회를 연다고 하면 부산에서의 지스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없어져 버릴까 심히 두려울 정도입니다.
과거의 전시 산업의 영광에 묶여 있는 담당자라면 분명 이렇게 항변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소 규모의 게임회사가 많아서 여러 게임이 개발되었고 그래서 출현 부스가 다양 했는데 최근은 대형 게임사 위주로 통/폐합되었고 개발사 보다는 서비스사 위주로 묶어서 출현하는 추세이며 또 대형 신작이 적다 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블리즈컨에서 똑같은 것을 하는데 '한국에서 또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하는 블리자드, 신작이 아예 없는 라이엇게임즈, 일본은 도쿄게임쇼에서, 중국은 차이나조이에서, 모바일은 수명이 짧고 등등 할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나마 이스포츠를 데려온 건 자신의 성과라고 하면서 알아달라고 졸라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스타와 이스포츠는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나요?' 라는 물음에 대답은 '없다'입니다. 내년에 당장 빠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이스포츠와 지스타의 관계입니다.
혹자는 지스타의 사양(斜陽) 이유를 차이나조이와 도쿄게임쇼에 비해 늦게 열리다 보니까 경쟁력이 밀려서라고 판단합니다. 시장 자체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가 안 되고 접근성이나 기타 여러 면으로 봐도 별로 내 세울 것이 없으니 그 이유가 정말 늦게 열리는 것 때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론은 경쟁력은 밀린다고 봐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지스타의 행사 형태가 최신 트랜드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지스타 조직위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부스파는 것과 배치하는 것 외로는 하는 게 없어 보입니다. 조금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매년 봐도 너무 달라지는 게 없기에 뭘 해야 하긴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올해도 대형 게임사 중심으로 위에서 부터 우선순위를 매겨 돌아다니면서 부스 유치 계획 수준의 지스타 기획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진심으로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입아픈 이야기는 진실로 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저는 세상은 마치 살아 있는 조직처럼 유기적이기 때문에, 필요가 생기면 누군가가 채우게 되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대답으로 새로운 전시 브랜드가 태어날 수도, 해외에서 그 필요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지스타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그 가치를 아깝게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WCG도 삼성이 PC사업에 손 떼서가 없어진 게 아니라 똑같이 이런 흐름으로 끝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나 마지막 즈음에 와서는 이렇게 하면 내년에는 정말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안탑갑게도 모두가 외부에는 한결같이 역대 최고라는 소리만 지르고 있습니다. 마지막 회였던 WCG 2013도 정확히 이와 동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스타는 누가 봐도 위기가 아닌가요?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점은 제발 이제는 그 역대 최고 소리는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대체 어떤 점이 역대 최고라는 걸까요? 혹시라도 망해간다는 소문이 나서 들어오려는 부스도 취소될까봐 덜덜 떨고 있는 수준이라면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스타를 살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개최지를 서울 코엑스로 옮겨 그 접근성을 최대로 끌어 올리는 작업입니다. 또 그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게임 회사들이 다 분당에 있는데 사실 부산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은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는 이 소리는 누군가는 해야 됩니다. 게임회사 담당자들이 부산에서 잠자고 밥 사먹고 택시타고 하는 건 부산 입장에서 좋은 일입니다. 또 이 이점 때문에 대관료를 거의 받지 않아서 조직위도 좋긴 하겠지만, 정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게임 회사들 입장에서는 어떤 점이 좋은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은 인천에 내려서 서울에서 하루 밤을 자고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야 됩니다. 최근에 와서는 이게 얼마나 큰 걸림돌인지 조직위가 정확히 이해를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부산에서 아무 행사도 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감수 할 수 있는 소위 잘나갈 때는 모를까 지금은 저대로 놔두면 심폐 소생이 필요한 수준이니 이 모든 것이 전부 부정적 요인입니다.
그 외 나머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행사의 성격을 축제로 변경하고 이와 성격이 맞는 행사를 최대한 비슷한 시기로 옮겨 관계 부처의 지원, 행사의 규모 및 집중도를 높이고, 콘텐츠 제작 위주의 참가자 중심으로 B2C를 전면 재구성하여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든 뒤, 시연 위주의 게임회사 부스가 지속적으로 노출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형태로 바꿔야 합니다. 여기서 추가로 시민 참여 형태의 행사도 기획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인 이스포츠에 대해서 조직위는 이 전시회와 이스포츠의 관계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 정립하고 조직위가 생각하는 이스포츠를 인터뷰 기사에서 보여주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스포츠 행사 유치에 적극 임해야 할 것입니다.
추가로 이야기하면 원래 게임이라는 것이 하이앤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픽 카드 회사나 CPU회사, 기타 장비 회사들이 같이 들어와야 합니다. 지금 지스타는 꼭 못 들어 온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특별히 지스타를 선택해야 하는 근거가 약한 것도 사실입니다. 지스타는 IT 하이엔드 제조업체나 장비업체에 무엇을 위해서 들어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제시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여기 소비자가 많이 와요'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는 너무 진부합니다. 게임 연관이라면 이스포츠, 또는 그런 비슷한 것 밖에 생각을 못한다면 그러한 한계를 뛰어 넘는 인사이트를 가진 인력이 필요한 것을 인정해야 할 듯 합니다. 지스타 행사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파코즈나 플레이웨어즈가 이런 회사와 상호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알수 있습니다. 더욱이 근원적인 형태의 게임 전시회가 랜파티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지금 무엇을 기획해야 하는지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연계되는 것으로 B2B는 컨퍼런스와 학술 발표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거나 하면 안되고 비즈니스라는 목표에 대한 상호 연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VR 컨퍼런스나 VR 학술 발표 앞에서 VR 시연과 VR 게임을 팔고 있어야 정상인 것입니다. 그 컨퍼런스와 학술회의에 비용을 지급하여 잠재력이 있는 바이어를 초청하는 것이고 모집된 바이어와 우리 부스 참가자간 사회(관계) 활동을 독려하고, 다양하게 발표된 자료가 온/오프라인에 공론화되어 이 분야의 트랜드를 이끌게 되고, 이러한 활동에 의한 결과물이 결국 전시회의 유의미한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스타는 '억울합니다.' 라고 하면서 '저희도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지금 있는 것들은 그 목적성이 불명확합니다. 그 근거는 단순합니다. 행사 이후 공공연하게 회자화 되는 자료도 없고 누가 열어보고 확인하고 인용하는 등의 아무런 부산물 창출도 전혀 없습니다.
발표하는 지표 역시 관객 숫자가 전부이자 모든 것 같아 보입니다. 가장 궁금한 점은 나갈 때도 바코드를 찍고 들어올 때도 바코드를 찍는 이유가 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B2B에 20만원을 내고 들어갈 만한 그 값어치에 대해서는 부스 참가자에게 온전히 의존합니다. 지스타에 참가하는 기업들이 어디서 무엇을 기획하고 있는지 주최측이 제공하는 통합 안내도 없고 그런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장소도 없습니다. 솔찍히 이쯤 되면 지스타 조직위가 게임 산업 종사자로 구성되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결론을 내리면 이제는 정신을 차리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언급한 모든 사항에 대해서 말이 쉽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말 안할 수가 없는 점을 이해 부탁 드립니다.
한번 왔을 때 이제 더 이상 올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대게 (정말 특별한 계기 없이는)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계기는 보통 거의 만들기가 힘듭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 저 멀리에서 '요즘 지스타 괜찮아 졌더라.'라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약간은 심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이 너무 달라져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빨리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을 데려가다 앉히고 한 발짝 물어나는 것을 요청 드립니다. 이는 그만 두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일은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두고 잘 하시는 일을 하심과 동시에 그 사람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시라는 의미입니다.
관계기관 담당자님들도 부탁을 드리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필요를 찾는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당일 아침에 모여서 테이프 커팅하고 관내를 돌아보시면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관계부처나 게임회사 유력자님 어디에 계신지 수배하고 악수 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매년 와서 보시니 이제는 알아 채시는 것도 많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요?' 라고 물으신다면 품평회를 해달라고 요청드립니다. 모여서 잘했다고 박수칠 원래 그 바닥에 계시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지 마시고 다양한 관련 업계 전문가들을 모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감을 느낀다. 우리는 항상 긴장하면서 우리가 발전해야 할 방향을 찾는데 늘 관심이 많다. 그것이 우리 관계부처의 할일이다. 여기 몇 가지 포인트들을 가져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다음 세대의 지스타로 나아갈 준비를 착실히 할 것이다.'
by erdc.kr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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