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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차 산업에서의 사회와 지식의 의미


사회는 그 속성상 우리에게 사회가 어떻다고 잘 설명하지도 않고, 그리고 가능하면 왜곡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매체에는 (*그것이 설령 1인 미디어라도) 보는 우리에게 사고를 강요하고 그 사고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늘 설명드리지만 사회(*그 속에 속한 조직)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지려하고 또 유기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며 사람들을 거기에 편승하도록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전자 보이스가 읽어주는 유료 채팅이 없던 시절과 유료 채팅이 있는 시절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예는 카카오뱅크, 삼성페이 등과 같은 전자 결제 시대가 도래한 것에도 적용되고, 그러한 의미로 이는 사실상 기술을 의존한 모든 방면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사회에서 나누는 세상에 그저 편승하는 것 외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비통하다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가 이를 인식하는가는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사회에서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서 옳고 그름과 유의미와 무의미, 가치와 무가치를 적극적으로 구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항상 그것이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로 가계 부채가 많은 나라일 수록 공영TV의 드라마나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영화 등이 가족애를 강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에 걸린 아버지가 콜록콜록하면서도 일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누군가가 그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일을 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말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는 항상 사회가 주장하고 싶은 이면이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많아서 이자를 내는데도 힘든건 알지만 아버님이 이자를 안내주시고 파산하시면 나라가 망하니 힘들어도 버텨주세요.' 라든가 '개인 파산 제도나 여러가지가 없는건 아니지만 활용하지는 최대한 말아주세요.' 같은 것들 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우리가 좋아하는 당이 집권을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사회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가족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늘 그것 보다 더 가치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또 그것을 이야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는 모든 것을 이상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신이 아니며, 그저 한계가 있는 인간의 모임일 뿐이라는 사실과 그래서 이 사회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면과 이면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절대로 왜 우리가 부채가 많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값이 왜 이렇게 비싸게 되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대학 등록금이 왜 이렇게 비싼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임대료와 권리금이 왜 이렇게 비싼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고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의 부의 되물림(불노소득)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본 영화 '코코'에서도 멕시코가 미국과 직면하고 있는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나 멕시코에 있는 아이는 왜 구두를 딲아야 되는지, 왜 심지어 사후 세계까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나뉘어 있는 자본주위가 팽배해 있어야 하는지 눈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게 구조화 되어 있습니다. 

사회는 아버지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채를 값는데도 허덕이게 되는지에 대해서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고 가족의 사랑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물론 언급한바와 같이 (*또 상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해야 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고, 가족애는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 사회의 숙제는 까발림으로 다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렇다고 정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사회는 사람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소결론 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우리 세게에서 만큼은 어떠한 정보를 사회에서 제공을 한다 해도 그 이상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우리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만일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젊으니까) 적은 돈을 받으면서 40만원이 넘는 돈을 누군가에게 월세로 내고 6,000원이 넘는 밥을 누군가에게 주고 사먹어야 하고, 누군가의 회사에서 야근을 밥먹도록 해서 경력을 쌓아야 된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회가 지금 우리 또래 애들에게 그것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안입고 안먹고 2년 동안 2천만원을 모았다고 해도,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 그 2천 만원 정도는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게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적 있나요?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이나 시간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는지를 묻는거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사회가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적어도 돈 2천만원이 아닌 어떠한 확실한 이유가) 존재하는 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 우리가 이 일을 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4차 산업이란 말 자체는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해체를 시켜 놓고 보면 사실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먼저 사람을 이해한 사람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필요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는 적절한 기술을 붙여 새로운 상품을 만든 후에 그 사회가 속한 시장에 내어 놓아 사람들이 사용하게 끔 하게 합니다. 줄여 표현하면 '사회를 이해한 사람이 기술에 그 아이디어를 결합해 상품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도 이러한 형태로 상품이 개발되었고 서비스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는 4차 산업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제 와서야 4차 산업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제가 이 책에의 중간 부에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우리는 궁금해 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3차 또는 2차, 1차 산업에도 그리하였지만 차수가 올라간다고 해서 이전 산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할 일이 늘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회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출현하는 아이디어를 기술에 접목해 구현해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그전까지는 모든 부분에서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필요하다 하더라도) 여타 일과 병행을 해도 상관이 없는 수준이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일에) 필수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전과 비교해서 정보의 양의 많이 쏟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허 출현 건수가 폭팔적으로 증가했고 지금도 그리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이전에는 지역 신문에 야식 배달업체의 광고를 실어서 내보내면 그 지역 신문을 잘라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가 유선 전화로 야식을 시켜 먹었는데, 지금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야식을 시켜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주문과 배달 시스템 자체는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해체하면 누군가가 어플리케이션으로 야식을 시키면 제3의 인물(서비스 업체)이 대신 주문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플리케이션이 이전에는 없었다가 이제는 생겼다는 점 외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입니다. 즉, (*꼭 문자 그대로 이렇게 표현 할 수는 없지만) 3차 산업까지는 온전히 동일한데,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4차 산업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여기 저기 TV 프로그램에서 혁신이나 성공 창업의 아이콘으로 늘상 찾아가는 배달의 민족입니다. 

물론 향후에 전화로 대신 주문해 주는 대신맨이 사라질 가능 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본질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는 닭을 키워야 하고, 누군가는 닭을 튀겨야 하고, 누군가는 결제를 해야 되고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야 합니다. 로보트가 닭을 키우고, 자동화 공장이 닭을 튀기고, 동체 인식으로 결제가 되고, 드론으로 닭을 배달한다고 해도 결국 본질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대신맨 어플리케이션이 무조건적인 성공 신화이며 4차 산업의 시작이자 끝일까요? 아닙니다. 온갖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는 수도 없이 출시되는 어플리케이션이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달의 민족은 과연 여기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요?

사회의 속성을 이해하고, 통제를 위한 총체적 그리고 창의적인 이해가 필요 합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속해 있는 작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늘 내가 그 공간에 있고, 지금까지의 히스토리를 알고, 현재 나누고 있는 대화에 속해 있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 단위의 사회의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변수도 많고 패턴도 다양해 아주 어렵습니다. 이 이해는 기본적으로 지식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전체 단위의 사회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내가 귀찮아서라는 설명으로 상품을 정의하지 않게 됩니다. 시대가 부르는 니즈를 어떤 기술 또는 어떤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로 소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전부다 사회를 보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우리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형태의 솔루션은 아닙니다. 물론 아이디어의 시작은 그리 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사회를 총체적 및 창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주도권(*통제)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차 산업까지의 전통 산업에서에 주도권이란 곧 경력을 의미했습니다. 경력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환경의 변화에 대해 자기가 소유한 시간을 그저 묵묵히 보내는 것입니다. 조직은 비슷한 경력을 소유한 사람들로 채워지고 대부분이 일들이 예상 가능한 선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조직내에서 누구도 독창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튀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조직의 적응이란 결과적으로 보면 나라는 <identity>를 버리고 조직에 필요한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는 시키는 것을 묵묵히 잘해내는 애가 인재였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기준은 (*그저 인내, 끈기, 노력에 기반한) 암기로 대변되는 공부, 입시, 고시 등 입니다. 그래서 '자격증이 있는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가'가 그러함을 확인하기 위한 요소로 중요했습니다. 이력서 각 칸들은 정확히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구조화 되어 있습니다. 회사 면접도 예외는 없습니다. 압박 면접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코드에서 생각하면 답변은 너무 쉽게 나옵니다. 너가 생각하는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속한 (*과거 또는 이전) 사회에서 필요한 누군가라고 너를 너는 설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과거 또는 이전) 사고방식의 가치의 틀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그 방면으로 필요한 인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4차 산업 부터는 이런 인재가 더 이상 인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이 오랜 시간을 보내왔니?' 라는 질문에 'LOL 마스터 티어까지 올라갔었습니다'는 의미가 있게 되어도 경영학과라든지 학점이 3.0이냐 4.0이냐 하는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단호하게 말하면 더 이상 이전의 사회가 원하는 것을 실현 시켜줄 인재는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유명 TV 프로그램의 한 강사가 말했듯이 모두가 같은 길을 갈 때 다른 길도 있다,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야 했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예상을 못할 정도로 사회가 너무 급변한 것이 문제이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결국 '지식이 필요하다'로 개념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는 농사와 같은 1차 산업에서도 그렇고 금융 상품을 파는 3차 산업에서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서있는 ICT 융합 콘텐츠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개념이 전환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경력을 쌓는 이유는 지식을 얻기 위함인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저를 예를 들면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게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게임에 대한 지식이 얇아졌습니다. 더군다나 이스포츠에 대한 연구 및 집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하면서 부터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생성되는 콘텐츠의 소비 패턴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면 필자에게는 누군가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는 친구가 인재인 것입니다. 전환된 신 개념의 경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 만난 한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거의 모든 이스포츠 종목 티어를 상위권까지 올려 놓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를 만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친구의 이력서에는 여전히 어학연수, 어디에서 무슨 인턴생활을 했는지, 대학에서의 성적이 얼마인지가 적혀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어학연수를 하고 어디 IT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다는 건 (*심지어 4차 산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필자에게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이 생각해줘도 직장생활을 해보긴 한 친구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LOL을 마스터 티어까지 올렸다는 사실이나 자신이 찍은 유투브 영상이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다는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저는 지금 대학 성적이 의미가 아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 이력을 경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걸까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 생각을 깨줘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LOL을 마스터 티어까지 올린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재미로 마스터 티어까지 올려 놓은 것의 (*게임상의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얻은 지식의 가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분별이 없는 지식은 시간을 소모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그 사람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킵니다. LOL을 마스터 티어까지 올리기 위해서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너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 얻은 것을 통해서 무엇에 어떤 적용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답할 줄 알아야 지식을 쌓은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분별이 없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노력이 같아도 경력을 쌓은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 논리는 어디서든 무엇이든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쌓은 지식은 과연 무엇에 근거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배님들에게 부탁드리는 내용도 있습니다. 가끔 창업을 주제로 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아쉬운 장면들이 나옵니다. 마치 4차 산업 관련한 모든 창업의 성공 열쇠를 시장의 규모와 대신맨의 필요도로 규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지닌 심사위원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4차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참가자들의 각자의 세상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들고 들어오는 상품과 그것을 심사하고자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보면 저는 늘 우리 후배님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을까?", "우리가 믿고 생각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상품이 우리의 좁은 세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가 있을까?" 우리 후배님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물음에 선뜻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때가 수두룩합니다. 


<황장석의 '실리콘밸리 스토리' 중 발쵀>
2011년 2월 17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실리콘밸리를 공식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기업인들과 마찬을 했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만찬에서 일자리 창출과 교육을 주제로 참석자들과 이야기했다. 시스코 시스템스, 트위터, 오라클, 넷플릭스의 CEO를 비롯해서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스티브잡스,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주커버그, 구글 CEO(현 알파벳 회자) 에릭 슈밋도 참석했다. 그런데 실리콘 밸리의 거물 기업인들과 벤처 투자가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만찬에 유일하게 초대 받은 교육자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존 헤네시 당시 스탠퍼드 대학 총장이었다. (중략) 

헤네시 전 총장은 창업을 지원하는 멘토였다. 1990년도 중반 대학원생 두 명이 보여줄게 있다면서 그를 피자 상자와 콜라 캔이 널브러져 있는 지저분한 창고로 데려갔다. 두 제자는 그에게 웹사이트 디렉토리를 보여줬다. 그들은 바로 야후의 공동 창업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였다. (중략)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재학 중이던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들이 개발한 '구글검색엔진'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한 스승들 가운데 헤네시 전 총장도 있었다. (중략) 헤네시 전 총장은 스탠퍼드 대학이 공학, 경영학, 의학, 자연과학, 디자인 등 세부 전동 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에 중점을 두고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스탠퍼드 D스쿨가 설립된 것도 그래서였다. 

위에 발췌한 책은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있어 스탠퍼드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필요성은 일부 조금 발췌한 것을 읽어봐도 더 이상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기관이나 진흥원 또는 대학은 많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산업에서 우수한 역할을 하는 곳도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4차 산업의 가장 명확한 샘플인 우리 e스포츠에 있어서 그러한 주도적인 역할을 소화하는 곳도, 대학도, 학자도, 전문가도 아직은 심히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일을 할 사람들을 세우고 발굴해야 할 필요성은 그러한 의미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으면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4차 산업의 성공 기업가들은 단순히 시장 규모와 대신맨을 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명확한 지식에 근거해 사회를 이해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를 (*스마트폰에 노출된 젊은 이들이 수를 반영한) 시장 규모와 (*커뮤니티 형성 및 활동 지원 시스템이 구축 된) 대신맨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얼마나 초라한 수준의 분석이 나오겠습니까? 이미 몇년 전에 블록체인 혁명과 같은 강의를 쏟아내고 있는 나라가 우리 앞에 바로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양질의 지식을 전하는 곳이 그러한 의미로 많아야 합니다. 목적지는 스스로 찾아가더라도 누군가 그 근거를 찾아 가는 길을 안내해야 할 필요성은 그래서 항상 존재합니다. 독자님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후배)를 처음부터 바른 지식에 근거하여 세워야 합니다.    

 

by erdc.kr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