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가 이 말로 그 이야기를 시작하실 때 저는 전혀 의미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이미 할아버지가 없는 이유를 아버지에게서 굳이 들어서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굳이 할아버지가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존재는 왜 없는지를 굳이 찾아서 알아야 할 만큼 나에게는 절실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빠'라는 사실을 당연히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것이 지금 내 삶에 과연 영향이 있는 것인지 체감이 안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처음 이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제게 고백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왜 지금의 아버지로 있어야 하는지를 저 한마디로 설명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고백이기에 그 의미를 알기가 더 어려웠던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과 그나마 내 마음속에 꺼려지는 한 가지, '가난'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제든 가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가난이 곧 불행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저에겐 가난은 아무런 죄가 아니니 아버지는 고백을 할 만한 잘못이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것은 '어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의 많은 이들과 같이 저도 아버지와의 단독으로의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것이 저 '고백의 기억'이고, 그다음이 어머니가 동생만 데리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 '밖에 나가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준 기억' 이 두 가지가 거의 전부입니다. 제가 두 번째 기억을 왜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이것은 '가난'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나와 지나치는 길에 포장마차가 있으면 늘 어묵을 사주셨는데 항상 하나 밖에는 사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현실을 같이 고려하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없는 그날 저는 아빠에게 "나 어묵 하나만 더 먹어도 돼?"라고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왜 그 질문을 하는지를 전혀 이해를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제가 본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한참을 이해 안 되는 표정을 지으시다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네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 저는 거진 30년이 지난 이 아버지의 그 말을 도저히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어묵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어쩌면 '실제 아버지는 나와 내가 이해했던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를 수도 있겠구나'라는 어떤 한 특별한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상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체험은 제게는 그 이후에 더 심리적으로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의 저는 '과연 이 괴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당시 11살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시기를 보낸 저의 대답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묵을 하나밖에 먹을 수 없는 경험을 가진 내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을 하게 되면, 그 이야기를 알 수 없는 아버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이 저 나름대로 그 사건을 정의한 듯합니다.
'괴리를 상쇄시키는 것은 공감', '공감이란 경험의 나눔', '경험 나눔의 방법은 소통', '소통의 원활은 이해, 그 결과는 화합'
그날의 아버지의 고백은 이를 테면 '너에게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정도의 수준의 고백이었다면 저는 별 가치 없는 대화였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저 문장조차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고백은 분명 제가 '어묵 사건'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이해도에 따른 괴리의 문제였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흔들리는 내 눈빛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눈치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공감이란, 소통이란, 이해란, 이처럼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발생하는 교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날도 분명 아버지와 나 사이에 (*말다툼과 같은) 무슨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신 듯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금의 저는 그날 아버지에게 '아빠가 없다'는 그 말 외로는 전혀 다른 것은 생각이 나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은 그런 듯합니다.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은 전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무언가가 있었고, 중간에 소강상태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불쑥 찾아와서 저 문장으로 대화의 물고를 튼 것 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저는 아마도 그날 그 고백에서 아버지는 경험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아빠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고백을 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들의 입장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의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나는 알고, 나는 네 아버지고, 이렇게 있으니 정말 잘 채우고 싶다'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는 상상을 해야 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나는 그 아들에게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프레임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버지는 실수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일생을 사시면서 단 한잔의 술도 마시지 않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낮은 수준의 범법에서부터, 심지어 제가 들을 만한 그 어떤 장소와 제가 볼만한 어떤 환경에서도 욕설을 하거나 남을 비방하는 모습도 눈으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를 테면 저희 아버지의 프레임은 '내가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내 아들도 올바르게 살 수 없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절대로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온전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군가 앞에서 온전해지려고 하는 것은 결국 고통이었을 듯합니다. 전혀 과격하시지 않으셨지만 반면에 그래서 더더욱 제게는 두렵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제 모든 시간 속에서 웬만하면 발생하는 그 잘못을 아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었을 듯합니다. 흔히 말하는 (*충분히 실수할 수 있기에, 때로는 과하게 화를 내기에, 어떨 때는 감정 조절이 잘 안되기에, 가끔은 빨간 불이지만 건너가기에)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라는 그런 개념은 아닙니다. 제가 슬픈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좌절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좌절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아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들아 아빠도 사람이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결코 면피용이 아닙니다. 아들에게 아빠를 정직하게 고백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들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를 정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두 가지를 얻으려고 합니다. 하나는 제가 제 아들 보기에 정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가 저의 한계를 인정하여 늘 그저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입니다.
결국 제 아버지와 저는 '다르게 되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강하지만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약하지 않지만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다음은 강하지만 겸손하진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주제는 아무리 줄여나가도 '세상은 약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감춥니다.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세상이 버린다는 말과 사실상 같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약자를 도울 수 있습니다만, 강자와 약자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약자를 굳이 선택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강자일 때는 강자로 살고 약자일 때는 약함을 감추면서 살아갑니다. 이 사실을 간단히 증명해 보면 예전 이력서에는 자신의 장단점을 서술하라고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강점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대 어필 포인트를 적지만 약점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큰 상관이 없는 것을 적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가장 처절하게 감추는 작업을 과연 언제 하게 되나요? 그것은 고백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고백하면 정직(*성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능(*약함)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능력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 이런 정직을 얻기 위해서, 능력을 버리게 되면 손해 아주 많이 보는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고백은 언제 하는 것입니까? 보통은 무언가 잘 안되었을 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단어로는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해체해보면 이와 같은 실패를 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에게 또 일을 맡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계속 말을 해도 우리는 '고백은 무능의 공개적 인정', '사회는 고백하는 자를 깔 볼 가능성이 있다'와 같은 것을 체험적으로 직감하고 있습니다.
고백이 이와 같은 약점을 가지는 이유는 고백의 속성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옳았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하고 쏟은 그 모든 시간이 사실은 헛된 것이라고 스스로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백은 나는 그 과업을 이렇게 설정해야만 하고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던 그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또 이는 이를 위해서 노력했던 세월은 다 허송세월이며, 나는 사실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일로 보이게 되어버립니다.
이내 저는 그때 '아빠는 아버지가 없다.'라는 그 말은 아버지가 아버지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그동안 아버지가 생각하고 믿고 노력했던 그 아버지란 다소 잘 못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과연 아들인 제가 그날의 그 고백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틈만 나면 '아빠도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랬어!'라고 쉽게 사과하는 나를 대하는 우리 아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 원래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말입니다.
이 아버지의 고백은 그런데 오히려 내 아버지의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하튼 분명하게 '잘하고 싶었다'를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있기 전에는 이런 아버지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절대로 내 아들에게는 그리하지 말아야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은 저를 오히려 내 아버지의 것을 같이 생각해서 밸런스를 잡는 것이 좋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방식은 그저 버려야 하는 잘못이 아니라 내게 경험이 되고 귀감이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정적으로 말씀드리면 잘하고 싶었다에는 그렇게 두 가지가 반드시 남게 됩니다. 하나는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성입니다.
"선생님이 없었어..."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필자님은 그렇다면 어떤 고백을 하고 싶으시냐'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에 이런 고백의 시작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건지, 어떤 일을 했어야 했는지 몰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예측하고 행동했던 역사 속의 그 모습들은 그래서 이상적이지 않았을 수 있어..'
더 나아가 E스포츠를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배님들에게 E스포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게 E스포를 좋아하는 세대들이 정의하는 E스포츠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답이라 생각하며 결국 그것을 아는 후배님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궁극적인 소원입니다.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고백은 이처럼 어느 정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좋은 시작이 됩니다. 어쩌면 심리전문가들의 말이 옳을 수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정직한 고백은 절대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단지 경험과 진정성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는 화합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이란 반드시 찾아가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날의 아버지와 제게 있었던 교감이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교감이 있어야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저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산업의 선배님들이 각각의 후배님들 앞에서 가능한 선 내에서 정직한 고백이 많아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자리에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질문도 받고 마음껏 '잘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자신 있게 대답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그랬기 때문입니다.
by erdc.kr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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