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플랫폼의 라이브 비디오를 끌어와서(*임베이딩)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엎어 서비스하는 형태의 비즈니스가 몇 년 전부터 있어왔는데 최근에는 별로 기억이 남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당시 크게 성장하지 못한 근본적 원인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에 대해서 원 사업자인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회사의 입장은 '현재로써는 굳이 막지 않는다'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스트리밍 회사들의 주요 수익은 비디오 내 출력 광고인데 자사의 비디오 플랫폼을 사용하면 (*어디서 틀던) 광고 수익은 스트리밍 회사로 오기 때문에 (*일종의 공짜 홍보를 해주는) 이런 서비스들을 아직까지는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다르게 이해해도 자체 제작 콘텐츠가 없다 뿐이지 그 형태는 인벤TV나 헝그리앱TV등과 결과론적으로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두 스트림(http://www.dostream.com)은 이전의 그러한 서비스를 일부 보완하는 형태입니다. 어떤 식으로 보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가라이브에 대해서 일정 부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가가라이브는 간단히 말해 막말이 가능한 랜덤 채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위키에 의하면 당시 동접자가 1만 명까지 치솟았는데 언급한 바와 같이 포인트는 두 가지(*막말과 랜덤)였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글 표현에 있어 강제적인 제한이 없는 서비스를 원하고 또 예상치 않게 (*나의 필요를 채울 또는 내가 필요를 채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바랍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이는 실제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위키는 가가라이브의 결과론적인 실패 원인을 랜덤 채팅 자체가 시들해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는 랜덤 채팅 자체가 시들해진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제공한 랜덤 채팅 서비스가 (*기술적 측면이 아닌 서비스적 측면에서) 안정적인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첫째로 가가라이브의 랜덤은 심하게 랜덤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간의 연결 지원이 미약했습니다. 양질의 대화 상대자를 찾는 것에 대한 노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습니다.
막말 역시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일부 인격 모독을 포함한 거친 표현들은 듣는 이를 거북하게 할 수 있지만 대화 주제의 일관성을 흩트리지는 않습니다. 인상을 찌푸릴 수는 있지만 가능한 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채팅에 들어서자마자 전혀 관계없는 저질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채팅을 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류들을 연속해서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치게 됩니다. 반면에 두스트림은 필수 요건인 익명을 보장하며 막말이 가능한 채팅을 제공합니다. 또한 (*완전한 랜덤 채팅 대신) 대화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들을 모으기 때문에 비교적 양질의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두스트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스트림에 게임 관련 스트리밍 또는 이스포츠 영상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저질의 이야기를 늘어놓겠다는 목적이면 굳이 두스트림에 오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차단 등 시도가 먹히지 않습니다. 결국 두스트림은 대화를 하기 위해 누군가를 찾는 노력을 줄여주고, 익명 등에서 랜덤 채팅의 요소를 일부 보완하며, 표현에 있어 제약이 심한 기존 플랫폼을 떠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면을 살펴보면 최근의 채팅의 도네이션은 시청자와 스트리머 간의 소통에 시청자 대표와 스트리머 간의 소통을 더합니다. 도네이션이 채팅 플랫폼을 떠나 스트리밍 화면에 개제(*일명 '전자계집' 독음 서비스)되면서 스트리머의 주목을 끌게 되고, 스트리머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도네이션을 장려하기 위해) 그 주제 중심으로 대화를 이끌어갑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스트리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 위한 기능으로 존재하는 도네이션이라면, (*시청자 또는 청취자인) 소비자를 도네이터가 일종의 대변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편의상 소통 대변인이라고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소통 대변인은 파워 블로거(*또는 인플루언서)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일종의 권위를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소통 대변인이 일종의 사이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대화는 곧 콘텐츠가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생성된 무언가 흥미가 있을 이야기는 플짤이든 포토짤이든 어떠한 형태든 완성이 돼서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되게 되고 공감과 비공감을 유발해 일시적인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순간적으로 커지고 이후 사라지는 이 거대한 공감대를 한 장소에 묶을 수만 있다면 일종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치상으로 보면 단순히 내가 무엇을 얻을지 모르는 랜덤 소셜 네트워크를 인위적으로 관심사를 한정하여 조절하여 참여자의 피로도를 줄여주는 것입니다.
추가로 소통 대변인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예인 '어그로' 개념을 짚어보면 좋습니다. 어그로는 일반적으로 탱커류가 등장하는 게임 플레이에서 활용되는 용어이긴 한데 사회적으로는 '이목을 끌다'로 단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관종(*관심 종자), 광역 어그로 등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 삶 저변에 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통 대변인은 긍정도 부정도 없는 개념이라면 어그로는 확실히 부정입니다. 부정적으로 쓰이는 용어라 부정적 이슈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애는 어디든 꼭 있다는 식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익명의 세상에서 (*설사 그것이 부정적 반응이라도, 심지어 부정적 반응을 즐기는) 관심을 끄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노력을 (*심리학에서는 정확히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 우리 산업에서는 무관심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일종의 이런 형태입니다. 조용히 백조가 노니고 있는 호수는 평온하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돌을 마구 호수에 집어던집니다. 새들이 놀라서 날아가고 그러한 행동을 보는 (*사실 평온한 호수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 욕설을 들은 아이가 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말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들어보려고 하나둘씩 모이고 또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거나 머릿속에서 그립니다. 과연 그러면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아이가 돌을 집어던진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즉,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길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에게 (*일부 수용 가능선에 있는 것까지 모두 묶어) 돌을 전혀 던질 수 없게 만드는 것에 다소 치중하거나 또는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의 사진(*그래픽) 전경 광고에 그래서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이런 호수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만일 우리가 수용 가능한 선에서 누군가 돌을 던지는 행동을 전략적으로 장려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을 장려하는 행위가 소비자의 커뮤니티 종속에 관한 목적을 달성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을까요? 이를 테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항상 이야깃거리가 없는 게 문제이지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커뮤니티에 대해 이상적인 형태를 그리는 와중에 이쯤에서 두스트림은 어디까지 발전해 온 형태일까요? 두스트림 사이트의 서비스 품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스트림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한 한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명확한 한계는 모두가 돌을 던지는 곳에서는 아무도 어그로를 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즉 이야깃거리가 (*구조적으로)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고무줄을 끊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은 그 누군가가 즐겁게 고무줄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스트림에는 그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사람들은 다시 본래의 스트리밍 플랫폼에 회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제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거기에는 내가 본질적으로 가장 가치를 느끼는 어그로를 끌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그로란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수많은 요소 중에 그저 하나의 예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가 오늘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샘플을 통해서 패턴을 추측하는 일입니다. 즉 우리는 (*어그로의 수준을 넘어서) 수용 가능 한선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인터액션을 끌어낸 다는 것에 대한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이 주제는 일정 부분 의미를 지닙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모든 주제에 대해서 모든 재미난 소재라는 이름의 게시판이 있으며 거기에 몰린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e스포츠와는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네이트 판이나 기타 커뮤니티도 콘텐츠 소비적 측면에서 볼 때는 전혀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e스포츠와는 달리 라이브 스트리밍, 채팅, 플짤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일시에(Simultaneously) 소화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또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재미있는 VJ의 스트리밍을 보거나 실력자의 스트리밍을 보는 것 그리고 e스포츠를 보는 것은 소비적 측면에서는 구조적으로 동일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국 라이브 비디오를 보면서 채팅하고 콘텐츠 제공자와 소통하고 이에서 발생하는 이슈로 콘텐츠를 재 생산하고 공유하고, 다시 그것을 댓글과 같은 형식으로 끌어내는 것 등은, 우리에게 현재 없는 것을 신규로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찾아서 분석하여 패턴화(*연구)하여 상호 묶을 것인가(*융합)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e스포츠 전문 커뮤니티의 서비스 형태와 가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과연 사람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그러한 의미로 이 질문을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렇게 그에 대해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본질에 대한 접근에 어떻게 안내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e스포츠 연구의 구체적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e스포츠에 대한 연구 전체는 말 그대로 이처럼 이러한 질문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해소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모든 연구가 그렇지만 성장하면 할수록 이러한 주제에 대한 조명을 사례별로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됩니다. 산업은 그것을 통해서 현재 수준의 연구보다 훨씬 고차원적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 기술과 현재의 궁극적 차이는 인사이트의 깊이의 측면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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