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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E스포츠 산업의 자리와 소통

사실 이번 주말에 해외의 유명 팀의 대표님의 인터뷰를 같이 읽어보고 그 내용을 살펴보려는 자리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있었던 우연찮은 모임에서 얻은 감동에 거의 그날 자야 할 밤을 온종일 시달린 관계로 그 내용을 풀어 여러분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것만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이것을 내 마음에 계속 품고만 있으면 계속 지은 죄도 없는 죄인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아 더욱이 그러합니다. 그 날의 우리 모임의 멤버를 밝혀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처음 만난 분도 계시고, 짧은 기간동안 비교적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신 분도 계시다는 것 정도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그 분들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없는 순수한 제 이야기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새로운 소식도 정보도 없기에 전혀 읽지 않으셔도 되는 글이라는 점을 시작 전에 미리 알려 드립니다. 


저는 슬픕니다.  그 이유는 <괴리> 때문입니다. 이 <괴리>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최근 2년간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있으면서 찬찬히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노력하시고 분주하셨고 쌓아온 많은 일들이 있으신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동료들이 계십니다. 물론 여기에 속하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우리 세상에는 악도 있고 선도 있습니다. 그렇게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본 우리 산업의 오늘은 선악이 아닙니다. 대답을 요구하는 세대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세대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해소할 수 없는 세대와 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신 세대 앞에서 해소할 수 없는 기성세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괴리>라 표현하였습니다. <괴>는 단절을 의미합니다. <리>는 떨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괴리>란 상호가 떨어져서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의 분노는 저는 이 <괴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명 말도 안되는 큰 결정과 큰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격려도 없고 존경도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세대들은 그들이 승리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상처 외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이 산업이 불안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억울함 속에서 저는 만난 그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정직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시간 위가 다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네가 과연 어떤 무엇이기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시면 물론 대답할 말은 없습니다. 이 세대들과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데에서 생기는 애국 외로는 저를 포함한 누구도 어디에 호소를 하겠습니까. 그것도 거짓이라 말하신다면 그것 자체도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 숙명 일 것입니다. 다만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이 있고 그로 인해서 성숙해야 하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가 믿고 있던 사실에 대한 부정이든 가지고 있던 정직함을 되돌아보는 것이든 말입니다.

 

우리 산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산업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산업은 핸드폰을 열어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면 분명 어디에든 이렇게 있는데, 도저히 그곳에 들어가 그곳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할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이든 잡아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도저히 더 이상은 못 버텨 포기를 해보려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미련이라는 것이 남아 다시 근처를 기웃거리는 많은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상상을 말하거나 거짓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심치 않게 이런 내용을 담은 메일을 실제로 받습니다. 제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밤새 많은 생각에 잠겨 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괜히 불러서 밥도 사먹여 격려하여 보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우리 아이들을 구원해야 할까요.  

 

그런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LCK 1부에는 10개의 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팀들은 적어도 재정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칩시다. 따라서 실제로 프론트의 역할을 나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 팀에 속한 사무국에는 얼핏 계산해 볼 때 사무국장 이하 5~7명 정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면 전부 7명이 있다고 해도 70명입니다. 사무국장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대략 생각해보니 저보다 대게 비슷하거나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제가 올해 41살입니다. 그러면 만약 제가 한 팀에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집에 아이 둘이 있는 가장이라면, 적어도 몇 살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요?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LCK 1부에는 10개의 팀이 있습니다. 그 팀의 로스터에는 최대 10명의 선수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대 100명입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은 20대 후반까지가 거의 최대입니다. 어디가 과연 더 좁은 문일까요? 이것은 분명 특정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저 우리가 말하는 그 산업의 실제가 어떤지를 생각을 해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기사로도 보고, 영상으로도 보고, 커뮤니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산업은 몸집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할 자리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문제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발전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오히려 퇴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소위 <틀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현재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있으며 무지 잘 나가고 있는 이 산업을 자기네들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형성시켜 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카르텔이라고 부릅니다. (*귀하디 귀한) 자리가 운 좋게 나도 아는 사람들끼리 돌려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지금부터도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공로가 많으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아직 이 산업에서 혹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위해서, 내용이 하나도 없는 빈 명함을 들고 돌아다니다, 저를 만나서 악수하는 경우가, 앞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받는 메일의 횟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매번 그러한 우리 선배님과 후배님들의 차디찬 손을 잡을 때 마다 저는 이 시대의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결국 한 가지 외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또 새 형태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업을 펼치게끔 돕고 그 사업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재들을 그곳에 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돈은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지식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힘이 닿는 대로 전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저를 알려, 준비된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저는 사실과 진심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 모임의 그 두 분 앞에서 그렇게 이 정직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 산업에 있는 제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그 <틀딱>들을 현재 그들이 이 산업에서의 자리가 있던 없던 아이들의 앞에 세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틀딱입니다. 저는 옛날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E스포츠 산업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여러분과 똑같이 E스포츠를 너무 사랑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사무국에 소속되어 한 업무를 하였습니다. 아무 이력이 없는 저를 뽑아주신 그분들에게 감사했고, 적은 임금이었지만 그것이 그 당시에 그분들이 제게 줄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알았으며, 제게 맡겨준 일을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어느날이 되자 우승이라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저와 저의 사무국 모두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우리가 우승한 것 마냥 너무 기뻤습니다. 한 선수가 우승까지 함께 고생한 사무국께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선한 사람들과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면 제가 생각하는 E스포츠 산업은 현재 매우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경험과 새로운 새대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를 결합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이와 같은 자리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우리는 세대별로 계속 소통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를 원하며, 제 경험을 바탕으로 미리 준비된 여러분을 산업 내에서 계속 만나기를 바랍니다. 걱정 마지 마세요. 이 사회 모든 틀딱 들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여러분을 세우는 일에 힘씁니다. "

 

우리가 세대별로 평소에 어떤 소통을 해왔는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를 테면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꾸준히 유의미한 소통을 해왔다고 한다면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먼저 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묻지 않고 바로 틀딱이라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묻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형 근데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에요? (*내가 내 나름대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설명을 좀 들어야 겠어요." 우리가 하는 말을 먼저 들어보자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옆에 서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통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적받아야 하고 정직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받아야 하는 것에는 그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그들이 우리를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그 산업을 위해 우리를 이해해줄 필요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평소에 그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늘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에게 신뢰를 보입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 터질 때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신뢰를 보입니까.

 

유니버셜하게도 우리가 왜 이해받을 수 있는가를 물으시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 능력의 한계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최근에 일어난 일과 같은 것에서 과연 누가 완전하게 자유롭습니까? 당당하게 완전하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늘 그 이유란 상호 신뢰 관계가 있을 때는 이해받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신뢰 관계가 없을 때는 핑계로만 치부됩니다. 신뢰는 누가 누구에게 얻어야 합니까? 신뢰는 우리가 신세대에게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입니까? 여기서 확정적으로 말씀드리면 신뢰는 희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희생은 무엇을 바탕으로 출현합니까? 100%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근원은 과연 무엇입니까? 왜 수많은 산업 중에 E스포츠를 택하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E스포츠를 좋아하고 사랑해왔던 그 마음입니까. 돈이라면 누가 봐도 오히려 박봉인 이곳이 더 이해가 안 되는 소리일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과 우리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E스포츠에 대한 마음이 그 첫 사랑때 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공간을 제공할 수 있으신가요? 여러분 중 누군가가 영상을 만들 수 있으신가요? 스크립트를 작성할 작가가 되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이야기들을 듣는 것과 소통을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제공할 여유가 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지난 몇 년간 아무리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는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 주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신가요? 트레바리와 같은 모델과 비교하면서 사업적으로 생각하신다면 답이 없을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볼까요?', '얼마나 볼까요?' 그런데 저는 이 질문에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사업적으로 접근하신다면 답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프라인에 사람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온라인으로는 과연 얼마나 보겠습니까. 다만 이 노력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명한 가치가 지닌다면 그리고 누군가가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고 싶으시다면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무언가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그 새로운 것이 그저 감사하게도 덤이 되지 않겠습니까? 

 

 

By erdc.kr

-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