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리터러시 시리즈를 여러 편 쓰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글이 마침표가 될 듯합니다. 그동안 읽으면서 이해하신 것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상처 받은 아이들이라고 쓴 이유는 상상하시는 바와 같이 보통 우리 아이들은 상처 받은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전부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유복한 환경에서 길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길러지지 않았다고 해서 대부분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선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실력이 있는 아이들이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도 부모들은 대게 반신반의합니다. 전문가들 앞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과 함께 있는 환경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를 상상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핸드폰 때문에 소리 한번 쳐보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그것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에 속한 것이지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이들 모두는 게임 때문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저는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누군가 언젠가 저와 함께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제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주제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 필요한 것들이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식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논리로 대화를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 약점을 파고드는 대화에는 매우 약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부족한 점을 보안해 준 것뿐인데, 저는 저를 공격하는 것으로 인식(*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를 제 쓴 뿌리라고 명명합니다. 이 쓴 뿌리를 어렸을 적부터 뽑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뽑히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대화가 있을 것 같은 자리에 아예 가지도 않고 더군다나 그런 대화가 있을 것 같으면 공격적으로 변하게 될 제가 너무 두려워 보통은 꽁꽁 얼어있습니다. 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지내지 못해, 하고 싶은 것들을 너무 많이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한 아이들 만큼 경험이 없었습니다. 제 취미는 아주 싼 취미인 게임뿐이었고 그래서 게임 이야기 외로는 거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친구들과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부족한 제 경험은 감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성격도 있어서 자신감도 있었는데, 모르는 것에 대해 놀림을 받지 않을까, 혹은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 돈이 없어서 못하는 내가 들킬까 봐 늘 조바심을 내었던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쪽으로는 (놀림을 심하게 받았다던가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 가서 울었다던가 등) 딱히 기억이 나는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약점에 대해서 갑자기 저는 매우 날카로운 아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책임감이 강한 아이들이 약점 공격에 약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열악한 우리 집에서) "내가 무너지면 우리 집은 정말 끝이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책임감이 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신에 꼭 어른이 되면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성공을 의미할까요? 그렇다면 약점을 공격한다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여긴 걸까요? 아무도 "그런 것도 생각 못했어?"라고 하지도 않는데, 혼자 그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결코 순종적으로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말을 공격적으로 한다. 예의가 없다. 이기적이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등 부정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 중 예의가 없이 말을 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제도권을 자주 부정하는 아이들은 반대로 상처를 받은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아이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있고, 우리가 영어 학원이나 수학 학원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인식해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영어 교재를 들고 영어 학원에 가는 동네 아이가 내게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는 바로 앞에서 PC방에서 게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가 길에 침을 딱 뱉고 지나가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 아이가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면서 나름 체계적으로 스크림(*연습게임)을 실현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제피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피나무는 커도 5미터 밖에 안되는데 주위에 훨씬 더 큰 나무들 사이에서 자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피나무는 키도 작은데 가시도 있습니다. 심지어 건드리면 다가오지 말라고 냄새로 풍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아주 소중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숲과 나무는 그 제피나무를 아무 말 없이 지켜준다는 사실입니다. 제피나무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무처럼 가시를 제거하라고 말하지도 않고 다가오는 건 위협하는 것이 아니니 냄새를 풍기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숲과 나무는 제피나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줍니다. 그 나무도 숲의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숲은 사회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은 어른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숲과 나무들 같이 제피나무를 대하고 있을까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하게 오늘도 성실하게 연습한 우리 프로게이머 지망생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의미는 위로가 더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위로는 그 상처를 아물게 합니다. 위로란 인정입니다. 인정이란 가치입니다. 즉, 상처를 아물게 하는 가장 특효약은 그 아이가 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된다는 일은 매우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프로게이머란 프로 E스포츠 선수도 의미하지만, 게임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도 포함됩니다. 이들은 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들이 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보면서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가치가 있는 사람들 인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그 아이들을 계도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이 현재 잘하고 재미있어하는 있는 일이 미래에 매우 가치 있는 일 일 수 있다고 어른들이 지지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는 게임 리터러시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 게임(*도구)을 통해서 서로 같이 즐기고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최종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종 목표는 우리 아이들이 게임(*도구)을 통해서 인간 본성이 누리는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듯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사회에 보이는 것이 게임에 대한 무지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제피나무는 약재로도 쓸모가 많은 나무입니다. 또한 냄새라고 표현하였지만 우리 사람에게는 향기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맡기 좋습니다. 숲과 나무가 제피나무를 죽이지 않고, 없이하려 하지 않고, 성질을 바꾸려고 하지 않은 결과가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돌아옵니다. 우리는 이제 제피나무는 우리에게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제피나무를 상처 받은 아이라고 말하면서 모난 성격에 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제 모든 게임 리터러시 관련된 글에 '중독'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포함이 안된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는 없습니다. 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저는 이 글에서는 우리의 미래를 적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미래로 나아간다면 중독이라는 단어를 크게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면 게임 중독은 더 이상 이슈가 될 일도 없을 것이고 사회에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독자님 아이를 사랑하십니까? 정말 아이를 이 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같은 자격지심이 가득 찬 아이도 이제는 장성하여 이런 글을 작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만나는 우리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모두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게임하면서 들뜬 톤으로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을 쏱아내는 아이에게도 인사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나에게 인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상처 받은 아이의 가시에는 찔려도 하나도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늘 그랬지만 누구의 예를 들 수 없어서 저를 예로 든 것뿐입니다.
by erdc.kr
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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