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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정의와 접근법

 

플랫폼이란 인터넷 세상 어딘가에 어떠한 기술로 설계되어 우리에게 무언가 제공하는 기능을 구비한 하나의 서비스 방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설명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제가 비유로서 설명해 온 바와 같이 '플랫폼이란 과연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위와 같이, 플랫폼에 대해서 접근을 할 때 부수적인(*기능적인)면을 (*본질보다) 강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기능이 새로 나왔으니, 그 기능을 넣으면 사람들이 아마도 (*그저) 사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식의 접근은 대부분 그래서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전부 본질에 대한 이해도 때문입니다. 본질이 없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그렇지만) 그래서 플랫폼은 특별히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기를 기대해서, 그것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구조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목적이 없으면, 구조화되고 설계화된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이 설계 시부터 100% 납득 가능한 형태로 반영되어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플랫폼을 (*그 배경을 바탕으로) 정의하면 일종의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무언가 내가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결국 정리하면 이는 어딘가에서 사람이 받거나 또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나는'이라는 표현 아래 사용할 수 있게 되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유명 BJ를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TV는 플랫폼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무언가(*콘텐츠 등)를 '만나서'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신을 만나는 공간으로 교회도 일종의 플랫폼입니다. 펫을 만나기 위한 공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도 역시 플랫폼입니다.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는 (*만나는) 주제(*상품 등)가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만남)이 없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도 사람이 있고 펫을 만나는 곳도 사람이 있습니다. 펫이 펫을 만나러 가는 플랫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이 신을 만나로 가는 플랫폼도 없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만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사람)가 친구를 만나거나 애인을 만날 때는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결과론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서로 만날 때 재미있기 (*또는 행복하기) 아니면 그저 좋기, (*아니면 그것이 무엇이든) 등등의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거진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애인을 만나는 게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ㅠ) 기본적으로 만남이란 항상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나를 개발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참석 결정한 컨퍼런스에서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은 그렇다면 어디에 속할까요? 그것은 적어도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일이 재미(*감정) 있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답변을 드리면 일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성취욕은 아주 좋은 예입니다. 행복이 있을 수 있는가를 물으신다면 있을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봉사활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봉사 활동은 분명히 일입니다. 그러면 (*일이라는 다소 불필요한 개념을 끌어들였지만) 결국 우리는 여기서 '만나다'에 대한 필요한 개념을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찌 되었건 만남에서 감정을 그대로 두거나 감정을 나름대로 적정선에서 배재하거나 하는 등의 판단을 스스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떠한 형태이든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편하거나, 재미있거나, 행복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한 목적 성취를 위해서라는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 목적 성취가 안되면 때때로 화도 납니다. 또 그것이 살을 빼기 위한 식사 조절과 고통스러운 운동이라도 (*즉 좋은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도) 본질적인 것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앞서 설명 언급한 내용을 비추면) 우리는 친구나 애인을 만날 때 서로가 좋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밸런스와 상관없이) 감정 충족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상호 계속 충족되면 거기서 발생하는 가치도 계속 지속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만나다'는 단어를 이토록 다소 깊게 생각해보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람들이 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납득하고자 하는 것이, (*피상적인 아닌) 실제적으로 어떠한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이 논리를 이어가 보면 이러한 이유로 최근의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은 결국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준다는 의미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그것까지 가는 과정이 정확히 무엇을 기반으로 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늘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고나라입니다. 네이버 카페에서 운영하는 중고나라보다 더 편리하게 기술적으로 구현된 플랫폼을 현재 누구나 언제든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이 구현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플랫폼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 의미는 결과론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단순히 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설명드리면,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당신이 만든) 더 좋은 기능을 구현한 새로운 플랫폼에서 중고나라와 같은 서비스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만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거기에 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결론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을 넣는 것은 중요하나, 그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나야 하는 서비스를 상호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행위는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상호 연관된 사람들의 감정에 기반합니다. 결국 그 인간이 가진 감정이 실체이며 그것의 실현이, 우리의 판단 속에서 명확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중고나라에서 사람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 홍보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중고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중고나라에서 그들이 나와야 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근본(*본질)은 절대로 기능 그 자체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결국 홍보라는 것도 그 사람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입니다. 이를 위한 가장 수준이 낮은 접근은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과 그것을 해결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수준의 접근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수준이 높은 접근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할 것을 가정하는 것과 그것을 해결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중고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충분히 가능하다'입니다. 이 접근에 대해서는 아래 마지막 주제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에 아마존의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저의 담론에서 일부 해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공간'이라 함은 서비스가 실현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물건을 구입하게 되는 장소가 '공간'이며 여기가 문자 그대로의 플랫폼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물건을 파는 행위를 서비스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물건을 사게 되면 소비를 시작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사회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다각도로 반품이 가능하지만 본질적 개념으로는) 사는 순간부터 소비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반품이란 소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일정 소비된 것에 대한 책임을 나라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판매 회사에게 짊어지우는 것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고나라의 미개봉 상품은 실제 오픈마켓의 물건보다 저렴합니다. 사람들이 판매자가 이미 한번 결심한 물건(*소비 값이 있어진)을 사야 할 이유에 대한 대가를 그 판매자가 지불하는 것입니다. 즉, 내게는 필요 없기 때문에 값이 싸진 것이 아니라 재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가 특정 상품을 구입함과 동시에 (*나의 실제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즉시 일부가 차감된 것이라고 해석해야 타당합니다. 또 영화를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1시간 정도 봤는데 지루하다고 교환이나 환불을 해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설사 환불이 되었다고 해서 내 시간까지 돌려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1시간 분량의 영화를 본 사실 (*즉 소비 사실) 자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어떻게 설명을 해도, 소비라는 행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상품이 서비스되는 장소로서가 아니라) 소비가 시작되는 장소가 실질적 개념으로의 플랫폼인 것으로 그 공간적인 정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자체는 상품이지 플랫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극장은 플랫폼입니다. 스포TV게임즈에 만든 카트라이더 하이라이트 영상은 상품이지 플랫폼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튜브는 플랫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장소에 사람들이 방문하여 왜 그 목적 상품에 대한 소비를 결심하게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그 시작은 상품에 대한 배움과 가치의 확인입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이것 외로도 플랫폼상에서 추가되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품은 나 혼자 소비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소비하는 것이 낫다와 같은, 즉 소비하는데 추가로 필요한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더 재미있는 것(*가치가 있게 되는 것)들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상품들을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방식대로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개념들이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을 응원했던 광화문 광장은 그러한 의미의 플랫폼입니다. 나 혼자 PC패키지 게임보다 MO 또는 MMO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LCK 공식 채널이 아닌 앰비션의 LCK 같이 보기 채널은 때때로 공식 채널에 버금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것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는 존경하는 부인님과의 어느 여유 있는 저녁 식사 자리였습니다. '아마존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녀가 제게 물었습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인정받기 어려운 대상이 자기 부인님입니다. 또 집에서도 일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을 상상도 못 했어서) 숟가락을 떨어트릴 뻔했지만, 부인님은 질문 이후에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근거는 기술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인프라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어떤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안정화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어디 회사를 아마존이 인수했고 그래서 MS나 소니 등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고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각 거점 물리 서버(*클라우드)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미 일전에 우리 업계 한 대표님과의 만남에서도 기술적으로, 또 추가 투자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역시나 알아듣는 데는 한계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의 대화에는 핵심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서비스가 얼마나 안정화되어 서비스되는 가가 성공의 근거로서 이야기되는 것은 절대로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것이 근거가 아니라 그 기능을 왜 사용하고 싶은지가 근거여야 합니다. 마치 내가 만든 이 새로운 게임은 버그가 없으니까 잘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들렸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도 많은 대부분의 증권가 애널들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아마존의 신 서비스를 평가하고 조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속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마존이 이 신사업에 대해서 그러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그 서비스(*상품)를 구현하는 것이라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분명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와 기술을 활용하여 (*다른 수많은 것들 중에) '대체 왜 그 서비스를 구현하여 제공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존이 하고 싶은 것은 어떤 유명 BJ(*인플루언서)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의 추종자(Followers)와 상호 만나는 플랫폼(*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에서 신규 게임을 같이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플랫폼(*게임 서버)으로의 전환 없이, 즉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모든 것을 논스톱으로 제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마존의 성격과도 맞습니다. 어떤 한 시청자가 잠뜰의 라이브 방송 중에 그녀의 초청을 받아 마인크래프트의 세상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고 그 만나는 전 과정을 다른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시청 중인 트위치TV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버레이 기능 등으로) 게임 속으로 즉시 접근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지어 (*우리가 트위치 방송을 보기 위해서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아도 되듯이) 게임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후 가상현실이 더 구체화되어 이 모든 기능을 사용함에 있어 HMD 외로 아무것도 필요 없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스팀에 가서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실행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면 스팀에 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계속할 수 있습니다. (*라이브는 아니지만) 어떤 특정 콘셉트를 가진 잠뜰의 콘텐츠에서 잠뜰을 거의 그대로 구현된 AI를 만날 수 있는 신 개념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같이 미궁을 탐험하는 유명 마인크래프트 모드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같은 콘텐츠이지만 매번 새로운 상황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이는 마치 잠뜰의 신개념 VOD에서 잠뜰은 마치 영원히 살아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는 마이클 잭슨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그의 명곡을 들으며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HMD 외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상상을 하면 이 HMD 역시 한 미래에는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에서처럼 렌즈와 같은 형태의 초소형으로 개발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정해진 대답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속 AI를 만나고 있지만 한 편의 영화 같은 시나리오의 게임, 아니 게임의 수준을 넘은 콘텐츠를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또는 그의 AI) +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상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마존이 이것을 꿈꾸고 또 바라보고 있지 않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이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에서 비롯되는 충분한 근거 있는 상상력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는 이 이야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부인님에게 했습니다. (*물론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인님께는 모든 면에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소크라테스도 못한 거라 저는 아예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보면 제 대답에 대한 부인님의 반응과 별개로 원래는 쓸지 말지 고민한 이 포스트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결국 부인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의미로는 필요한 사람들은 또 이 글을 찾아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정리를 하면 플랫폼에 대한 내용은 이 포스트까지 포함해서 총 3편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 가지는 의미, (*세부적으로) 세대적 접근법, 그리고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플랫폼이라는 개념의 성격과 성장 방향 등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편부터는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명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가지고 있는(*가지고 있어야 할) 가치라는 것의 속성과 그것이 어떠한 패턴으로 발현이 되는지에 대해서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콘텐츠로 시작해서 콘텐츠로 마무리 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 정도 수준만 이해하고 있다면 적어도 외부와 비교하여 뒤쳐지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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